허용되는 범죄 있을 수 있는가?
허용되는 범죄 있을 수 있는가?
  • 이선구(멀티미디어공·3)
  • 승인 2015.05.20 17:06
  • 호수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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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반출이 불법이었던 원나라의 목화씨를 붓뚜껑에 몰래 숨겨 들여와 고려 말에 목면(木棉)을 널리 퍼지게 한 문익점의 일화를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훗날 문익점이 목화씨를 몰래 숨겨왔다는 사실 자체는 거짓으로 판명이 났지만, 문익점이 목화씨를 숨겨가지고 왔다고 알려져 있던 그때에도 문익점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업적’으로써 역사에 새겨져 있었다. 어디까지나 국외반출 금지의 물품을 밀반입으로 들여오는 ‘범죄’를 저지른 것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목면기술에 발전을 이루었다는 ‘업적’으로써 인정을 받은 문익점. 이에 대해 나는 묻고 싶다. 과연, 허용될 수 있는 범죄란 있을 수 있는 걸까?


 예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자. 나치정권 시절에 수많은 학살이 일어났었던 죄수 수용소의 관리인은, 사실 소박한 꿈을 가진 한 명의 농부였다. 그 이전까지 별다른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던 그는, 히틀러에 명령에 의해 유태인 학살이 자행되는 수용소의 관리인이 되었다. 무자비한 학살이 벌어지는 참극의 장소를 관리한다는 것이 농부는 당연히 꺼려졌지만,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히틀러의 명령을 어길 시에 자신에게 닥칠 일이 두려웠던 그는 어쩔 수 없이 관리인으로서의 맡은바 임무를 착실히 수행해 나갔다. 이 경우, 우리는 농부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까? 비록 자신의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던 탓에 억지로 맡았다고는 하나, 수많은 인권을 유린한 장소의 관리인이라는 죄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곳에서 행해진 학살은 관리인인 농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농부만의 잘못이라 할 수도 없다. 누구나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 농부 자신이 죄를 짓고 싶지 않다고 해서 생면부지의 타인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의무는 없다. 길을 걷는 사람에게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딱 잘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하지만 세상은 자신의 목숨을 중히 여긴 농부를 비난하고, 불법으로 물건을 반출시킨 문익점을 칭송한다. 물론, 그 둘이 처한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들이 알아둬야 할 것은 어떠한 목적을 갖고 있었을지라도 범죄는 범죄, 그 이상의 의미를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때 우리나라의 4대악 중 하나로 꼽히는 학교폭력을 미화했다는 논란이 있었던 S방송국의 한 특집 프로그램에서처럼, 범죄는 결코 그 본질이 가지는 의미 이상을 지니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좀 더 자극적인 방송 소재를 위해, 한 순간의 철없는 치기에 의한 옛일이라는 허울 좋은 변명을 앞세워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폭력을 미화하거나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여전히 상처가 아물지 않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 그것이 ‘명분’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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