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들의 하버드
가난한 자들의 하버드
  • 김승일(사학·3)
  • 승인 2015.05.21 15:06
  • 호수 13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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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석학 중에 한사람인 폴 크루그먼 교수가 자신이 몸담고 있던 프린스턴 대학을 떠난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그가 선택한 곳이 미국의 대기업이나 다른 명문 대학이 아닌 ‘뉴욕 시립대’라는 작은 대학이라는 점이다. 크루그먼은 자신의 관심분야인 소득 불평등과 분배 정의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뉴욕 시립대가 더 좋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와 명예보다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뉴욕 시립대(City University of New York)는 어떤 대학인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뉴욕의 주립대학은 크게 두 곳이 있다 하나는 SUNY라고 불리는 뉴욕 주립 대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뉴욕 시립대학교이다. 이 학교는 1847년 첫 주일 미국 대사였던 타운센드 해리스가 무상교육을 위해 만든 대학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성적 85점만 넘는다면 누구나 입학이 가능하다. 좋게 말하자면 모든 학생을 위한 대학인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X나 소나 가는 대학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대학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잡대’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대학 출신들 중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12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회계학과 의학 분야는 그 어떤 미국 최상위 명문대학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비록 아이비리그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캠퍼스나 화려한 명성은 없지만 교육환경이나 그 아웃풋에 있어서만큼은 아이비리그에 뒤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학교의 학생들은 자기 대학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공부한다. 이 때문에 CUNY는 ‘가난한 자들의 하버드’라고 불리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대학교에서도 서열은 분명히 존재한다. 매년 평가를 하고 그 순위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 서열은 결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자기의 가치관과 관심 분야, 진로에 따라서 진학하는 대학이 다르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폴 크루그먼 교수의 행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이미 자신의 관심분야보다 대학 간판에 치중하는 한국에서 지방대나 전문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공부를 하거나 취업을 하는데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인생에 있어서 고작 4%정도에 불과할 대학생활이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대학은 다르다. 비록 처음 입학했을때는 부족한 사람이었겠지만 그 이후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최고의 인재로 거듭날수 있는 것이 미국의 대학 교육 시스템이다. 얼마든지 역전할 수 있는 기회 즉, Second Chance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사례는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방향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시사해주고 있다. 진정한 명문 대학이라면 비범한 인재를 입학시켜 그대로 졸업시키는 것보다는 평범하거나 부족한 사람을 비범한 인재로 만드는 대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를 가진 학생들에 대한 투자가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 대학들이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그것은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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