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자석. 자신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낼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주간기자석. 자신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낼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 김아람 기자
  • 승인 2015.05.26 14:19
  • 호수 13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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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대신문에서 기자활동을 시작한 지 벌써 1년이다. 취재를 직접 해보기 전까지 기자는 하나의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학 내의 사건을 취재하고 있노라면, 왜 사람들이 대학을 사회의 축소판이라 여기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학교와 학생의 연결고리로써 학교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학생들의 이야기를 학교에 전하는 것은 가장 큰 어려움이며 제일의 보람이자 즐거움이다.

이번 호 법인부담금 관련 취재를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점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신문에 싣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이다. ‘등록금 비중이 높은 우리 대학 운영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주제는 답하기 좀 곤란한데…”, “혹시 이름 들어가는 거면 그냥 빼주세요”라고 답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일까, 아니면 혹시 모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일까.

문득 1387호에 실린 ‘교수 강의평가 결과, 실무 개선에 반영해야’ 기사 취재를 했을 때가 떠오른다. 기사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당시 많은 학생이 “강의평가를 좋지 않게 하면 교수님에게 성적 상의 불이익 등을 받을까봐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좋게 평가한다”라는 답변을 했다. 대학에서조차 자신의 의견을 쉽게 개진하지 못하는 젊은이들, 우리는 사회 기득세력에 대한 ‘무형의 압박’을 벌써부터 의식하고 있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나 압박 없이 기득세력을 비판할 수 있는 환경이 민주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사회는 요건이 충족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발전을 위한 내부 비판자를 배신자로 몰아세우거나,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자 언론을 탄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비판 없는 발전은 존재할 수 없으며, 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우리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청년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거침없어야 한다. 진짜 ‘목’이 걸려 있는 사회에 뛰어들기조차 전에 본인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주체성은 언제 쌓아갈 것인가? 마땅히 나서야 할 것에 대해 외면하고, 나서는 사람에게 오히려 ‘현실 감각 없는 멍청한 사람’이라는 눈길을 보낸다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발판은 영영 마련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니야. 심하게 맞은 날엔 얼굴에도 상처가 생겼지만, 나의 대답은 일관된 것이었다. 싸웠니? 넘어졌어. 처음엔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또 나중엔 더 나빠질까봐 입을 다물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니? 아무렇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삶이 그런 식으로 이어졌지만, 아무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곳이 한군데 있었다.’ (박민규, 『핑퐁』 중)

‘아무렇지 않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이제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때이다.

김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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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ingU_aram@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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