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단지. 미국 교환학생 파견 중 태국인 친구와의 대화
꿀단지. 미국 교환학생 파견 중 태국인 친구와의 대화
  • 허은희(정치외교·4)
  • 승인 2015.05.26 15:43
  • 호수 139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의 굴레에서 우리가 설 곳

 

2014년 9월 미국 교환학생 시절, 내일 있을 국제교류박람회 행사 준비를 위해 기숙사에서 혼자 씨름하고 있는 내게 놀러 온, 태국 출신 교환학생 오유아. 그녀와의 대화는 나의 새로운 관심사에 가지를 뻗게 했다. 그녀는 내게 태국에 있는 자기 대학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여기 미국 학생들은 수업 때 제 시간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태국에서는 시험만 무사히 치르면 되지, 만약에 자신이 그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되거나 할 일이 있으면 수업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갑자기 그녀는 주제를 바꿔, 태국 대학에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Hazing’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말로는 ‘신고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실제로 태국에서는 매년 선배들의 고약함으로 자살한 신입생들의 수가 상당하단다. 신고식 문화는 좋게 보면 같은 전공 내 구성원 간의 연대와 정을 중요시 생각하는 공동체 정신의 구현 같지만, 이면에는 개개인의 개성 무시, 약자에 대한 폭력, 그리고 나아가 사회 기득권층이 요구하는 뿌리 깊은 연고주의 형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유아는 자신이 설명하는 현상이 불과 이 십여 년 전까지 한국이 앓던 것과 거의 유사하다는 내 이야기를 듣자 크게 놀랐다. 그렇다면 어디서 이런 근원이 나타났을까? 오유아는 이러한 일상 속 위계질서가 미국에서 왔다고 내게 말했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크의 대학생활을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2015, 데이빗 핀처 감독)>는 최고의 명문 하버드 대학의 클럽 내 선배들의 사악한 후배 환영식의 일면을 보여준다. 자유의 상징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대학들이 매우 위계적인 질서 속에서 학생들을 관리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교육 문화는 세계화를 타고 전 세계 신생 국가들로 널리 퍼졌다. 특히 군대집단의 쿠데타와 집권을 겪은 국가, 예를 들어 태국과 한국은 그 영향을 더욱 밀접하게 받은 것이다. 역사의 흔적은 이렇게 국가마다 다른 속도로 현실 속에서 교과서처럼 진행되고 있다. 뭐든지 원인이 작용하면 결과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미 ‘원인의 씨앗’이 심어졌기 때문에 그에 따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역사가 남기고 간 부정적 결과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고민해본다. 역사의 잔재를 인지, 앞날을 예측하고, 대응방법을 고안해서 현시대를 이끄는 지식인들이 함께 각성하며 낡은 문화를 벗어 던져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일방적 세계화의 원리

소수를 위한 세계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왜 우리는 서구문화에 너무도 쉽게 동화 되는가? 그건 그 외의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있던 미국 대학의 ‘쓰레기 분리수거 제도’의 부재는 내가 한국에서 행하던 친환경적인 처리 방식을 포기하고 이곳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행동을 따르게 만들었다.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가진 습관 하나를 포기하는 것에서부터 세계화의 나비효과는 시작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