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10. 왜 20대는 투표하지 않는가
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10. 왜 20대는 투표하지 않는가
  • 배한올(영화·15졸)
  • 승인 2015.06.02 19:04
  • 호수 13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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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에서 깨어나 권리를 위해 투쟁하라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20대 투표를 부르짖는 글로 넘쳐났다. 모두 선거의 중요성에 공감했다. 선거 당일 페이스북에는 투표 인증을 하는 ‘놀이’가 유행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그대로였다. 7080세대의 대학생은 학생운동을 하는 시대의 등불이었는데, 왜 지금의 대학생은 정치에 무관심한 걸까. 정치적 이슈에서 불가촉천민 수준인 대학생은 왜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걸까.

데카르트가 말했다. “개인은 성인이 되기 전에 어린아이였다.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던 어린 시절, 가슴에 품었던 수많은 의견이 바로 우리의 선택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선입견이 된다.” 우리는 20대 이전에 10대였다. 어린 경주마들은 수능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길러졌다. 그런데 20대가 되자마자 갑자기 세상을 넓게 보라니. 열아홉살에 정치 얘기를 꺼내면 학생의 본분을 모르고 주제넘은 소리를 한다고 여겨진다. 스무살이 되면 기성세대는 우리에게 ‘너는 이제 성인이고, 시민으로서 책임을 져야지.’ 하며 투표라는 중요한 권리를 던져준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억압된 상황에서 품고 있던 정제되지 않은 오해와 수많은 선입견이라는 나무가 자란다. 10대 시절 형성된 이 나무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정치와 선거 투표는 먼 미래로 유예된다. 하지만 그 미래가 다가온 지금 20대에서 투표는 의미를 잃었다.

20대는 의미를 잃은 투표를 포기한다. 도시 정치의 역사에서 관심이 강하게 고조되는 시기 다음에 무관심의 시기가 뒤따른다고 한다. 역사가 말해주듯 혁명은 늘 미완이다. 독재정권은 물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숨어있는 하이에나처럼 민주주의를 물어뜯기 위해 우리 곁을 맴돈다. 뭘 해도 똑같을 것이라는 절망이 밀려온다. 포기의식과 절망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로 변한다. 절망의 표출로 투표를 포기한다. 포기는 도덕적 우월감(이런 진흙탕에서 도덕적으로 더러운 자들과 섞이지 않겠다)의 다른 표현이다. 결국, 논쟁은 있어도 공통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는 없는 사회에서 개개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몰두하게 된다.

지금의 대학생은 더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열사들이 아니다. 이제는 대학교육이 고등학교의 연장이 되어버렸고, 대학생이란 신분이 그 어떤 미래도 보장하기 어려워졌다. 대학 역시 변했다. 20대들의 정치 담론은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취업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분위기는 경쟁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본적인 과, 학부, 학생회 같은 커뮤니티가 와해되고 있다. 연대감이 줄어든 대학은 이제는 사회적 담론을 고민할 공간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불쑥 대자보와 같은 사건이 생기지만 담론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대학은 이제 공동체가 아니라, 학점과 스펙을 내어주는 은행과도 같다. 기성세대는 정치와 우리를 고민하지 않는 ‘대학생’을 손가락질하지만, 정치와 학생을 고민하지 않는 기업과 같은 ‘대학’에는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연대하지 않는다. 대학은 공동체의 부재 속에 원자화된 개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대학생인 서로를 모른다. 계층은 섞이지 못하고 벽은 더욱 단단해진다. 예전과 같은 하나의 아젠다(Agenda, 의제)를 가지지 못한다. 학생운동 시절에는 독재 타파, 민주주의 확립이라는 아주 강력한 목표가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복잡하고 세밀한 문제들이 곳곳에 있다. 서로를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아스러진다.

루소는 정치와 시민의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시도는 힘들고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본연의 불공정함을 깨닫게 하고 그토록 많은 사사롭고 이기적인 작은 특권들을 포기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편리함이나 습관과 반대되는 정신적인 노력이 필요하기에 또한 힘들고 까다로운 것이다. 일상의 나태는 무기력함과 결합해 사람들을 예속 상태에 묶어 둔다. 나를 대신해 생각하고 결정하고 통치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모든 군주는 이 나태함을 이용한다.”

먹고 살기도 힘든 이 세상 속에 담론이 생길 공간도 잃은 우리이지만, 그래도 인간이기에 고민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담론을 형성하고 정치적 관심을 키워나가기에 척박한 환경이기에 분명히 귀찮고 힘들고 피곤할 것이다. 당장 내 앞의 취업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나와는 다른 세계를 가진 또래들과 대화하기 싫을 수 있다. 또한, 논쟁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기성세대에 대한 거부감이 클 수 있다.

하지만 이 진흙탕과 같은 세상에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를 위해 끊임없이 논쟁하고 행동해야 한다. 대학생을 위해 목소리를 내줄 집단은 없다.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더는 불가촉천민으로 고통받기도 싫고,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손가락질받기도 싫다. 우리에겐 고민을 뿌리내릴 시간과 공동체가 필요하다. 기성세대 역시 이런 20대의 고민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같이 고민해야만 한다. 정치와 투표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태도이다. 대학생이여 단결하라.
 

배한올(영화·15졸)
배한올(영화·15졸)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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