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의 필론들이여, 깨어나라
단국의 필론들이여, 깨어나라
  • 이민지 기자
  • 승인 2015.06.03 12:18
  • 호수 13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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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필론의 돼지」를 읽었다. 이 작품은 군인들이 타고 있는 열차라는 배경을 이용해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열차 안에서 특수부대원인 다섯 명의 ‘검은 각반’들은 권위를 앞세워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일반 제대군인들의 돈을 갈취하며 행패 부린다. 부조리에 몇몇이 대응해보지만 폭력으로 응징당하고 이는 그저 방관된다. 그러다 일순간 억눌렸던 분노는 터지고 제대군인들은 모두 검은 각반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이 대응은 단순히 검은 각반을 제지하는데 그치지 않으며 결국은 목적을 잃은 무차별적 분노가 되어 과도한 집단폭행으로 변모한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지식인’인 주인공은 그저 조용히 다른 객차로 자리를 피한다.

이는 70년대의 작품이지만 최근 다시 재발행 됐다. 책이 재발행 되는 것은 시대적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현대인은 ‘비겁’이라는 죄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현재의 한국은 ‘나’를 위해 회피와 침묵이 암묵적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사회다. 외면을 하는 사이 분노는 억눌리고 뒤틀린다. 이 분노가 감정의 폭발로서 터져 나올 때는 집단행동으로 인해 내 책임이 분산되고 승산이 있다고 판단될 때다. 이런 뒤틀릴 대로 뒤틀린 감정의 범람은 긍정적인 민중의 외침보다는 마녀사냥에 가까울 때가 많다. 쌓여왔던 분노가 타겟을 정하는 순간 논리와 정도는 없어지고, 그를 완벽하게 ‘묻어버렸을’ 때 집단들은 정의가 승리했다며 자축한다. 이문열이 그려낸 군용열차 안의 풍경은 그저 70년대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대학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할 곳이 어디인지 모르며, 학점과 취업에 급급해 부조리를 보고도 외면하게 된다. 그러다 커뮤니티, 온라인 등에서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퍼져나가면 본인도 원래 그렇게 생각했던 양 그 기류에 편승해 공격대상에게 맹렬한 비난을 쏟아낸다.

부적합한 기준의 석좌교수 임용, 교내 군기사건 등 이번 학기에는 유독 부당한 권위에 의한 일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이 보여준 대응은 위에서 언급한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물론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나서야 할 필요는 없으며 침묵을 무조건적으로 비겁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에 다니는 지성인으로서 우리는 더욱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조건 뛰쳐나와서 투쟁을 하고 실체가 있는 행위적 저항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의 각 구성원들과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 정도는 지성인으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방관의 잠에서 깨어나 행동할 때다.

이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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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swl73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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