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교육이 윤리적인 인간을 만들지는 않는다
윤리교육이 윤리적인 인간을 만들지는 않는다
  • 유헌식(철학)교수
  • 승인 2015.06.03 12:21
  • 호수 13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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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교육부가 제정 공포한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르면 인성교육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아가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을 인성교육의 핵심가치로 규정하고 있다. 그간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이 인성(人性)보다 지식(知識)을 우선시하여 ‘인간 교육’을 간과했다는 반성의 소산이다. 가정불화, 학교폭력, 사회적 무질서, 부정부패 등은 지식의 학습에만 치중해 온 학교교육으로 인해 우리사회가 직면한 윤리의식의 위기를 반영한다.

1970년 이후 소위 ‘국민윤리’가 정책과목으로 지정되어 고등학교 교과서로 출간되고 대학에서도 교양필수로 자리 잡았다. ‘지식 습득’ 이전에 ‘윤리적인 인간’의 필요성을 앞세운 국민윤리의 내용은 하지만 위정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더러 ‘윤리교육’으로서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함에 따라 ‘국민윤리’는 대학에서 퇴출되기에 이른다. 그런 한에서 지금 정부에서 구상하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과거와 유사한 방식과 내용으로 채워져서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시청각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취향을 고려하여 윤리적인 내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시청각 미디어를 활용하는 데 몰두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시청각 미디어 자체의 감각적이고 외면적인 속성상 윤리의식의 정신적인 내면화로 이어지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윤리의식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 책임을 ‘윤리교육의 부재’에서 찾을 수 없다. 서구 선진국에 비하여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윤리’에 투자했는데도 사회의 부조리는 그들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윤리교육의 양이 부족하여 비윤리적인 인간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윤리교육의 주체와 방식이 문제다. ‘윤리교육’은 학교에 국한되지 않고, 가정과 학교와 사회의 동시적인 노력이 필요한 사항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부모와 어른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이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인간’을 가르치는 인성교육이 종래의 ‘윤리 지식교육’에 머무는 한 인성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 윤리학은 지식에 지나지 않아서 윤리적 행위의 동기를 유발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 윤리적인 행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윤리강령이 윤리적 행위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윤리적인 모토와 슬로건이 현실성을 얻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생각이 행위로 옮겨질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윤리교육은 윤리적 행위를 촉발하는 계기로 작동하지만 이 계기에는 윤리적인 행위를 유발하는 ‘공고화의 과정’이 요구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의 가치를 재고하고 보존해 온 인문학의 고전을 읽는 일은 윤리적인 사고를 윤리적인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데 최적의 경제적인 길이다. 인문 고전은 생각의 긴 호흡(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고전의 독서는 정신의 활동을 넘어 신체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윤리적인 당위는 최종적인 ‘결과’만을 담고 있어서 지식과 구호에 머물기 쉽지만, 인문고전의 독서는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독자가 간접체험하게 하여 주어진 사태에 생각을 밀착 심화시킴으로써 생각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유헌식(철학)교수
유헌식(철학)교수

 yooriu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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