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 장형선생 독립운동 발자취 사료 발굴 (中) 설립자 장형 선생, 국제사회에 ‘임시정부 승인과 독립 지원’ 운동에 참가
범정 장형선생 독립운동 발자취 사료 발굴 (中) 설립자 장형 선생, 국제사회에 ‘임시정부 승인과 독립 지원’ 운동에 참가
  • 전경환 수습기자
  • 승인 2015.06.05 20:34
  • 호수 13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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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미국서 발행된 신문에 이강, 박영호, 윤치호 등과 함께 독립 서명 참여

범정 장형 선생이 대한민국의 독립의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한시준 동양학연구원장은 최근 “장형 선생이 1922년 1월 28일자 미주지역의 대표한인 신문인 ‘국민보’에 고종의 아들인 이강을 비롯해 박영호, 윤치호, 이상재 김윤식 등 독립운동가 372명과 함께 서명하였다”고 전했다. 서명의 목적은 미국, 영국, 프랑스,이탈리아 등이 참여하는 ‘태평양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승인과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형 선생은 ‘반도고학회 대표 장세담’ 이라는 이름으로 서명하였으며 ‘장세담’은 장형선생이 독립운동 시기에 사용한 이름이다.


태평양회의는 1921년 11월 21일부터 1922년 2월6일까지 워싱턴에서 미국 주도하에 영국, 프랑스, 이태리, 일본 등이 참가하여 해군군비축소 및 태평양과 극동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개최된 회의였다. 당시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태평양회의에서 한국문제가 다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임시정부의 승인과 한국의 독립은 요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임시정부에서는 태평양회의에 임시정부 승인과 독립을 청원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기구로 ‘대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승만 · 서재필을 태평양회의에 출석할 대표단으로 임명하는 한편, 국무총리 신규식을 손문의 호법정부에 특사로 파견하여 중국측의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와 더불어 청원서는 국내 지도자들의 명의로 제출하기로 하고 국내 지도자들에게 임시정부 승인과 독립을 요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토록 하였다.


임시정부의 요청을 받은 지도자들은 태평양회의에 제출한 청원서에 서명하였다. 청원서의 명칭은 ‘한국인민치태평양회의서’였고, 서명자는 각 단체 대표 101명과 각 지역 대표 271명이었다. 임시정부는 국내지도자들이 서명한 청원서를 미국에 있는 이승만 · 서재필에게 보냈다. 이들은 이를 영어로 번역하여 1922년 1월 태평양회의 사무국과 참가국 대표들에게 제출하였고, 동시에 언론에도 공개하였다. 이를 “국민보”가 보도한 것이다. “국민보”는 대한민국승인청원서발포‘라는 제목으로 4면의 전면을 할애하여 청원서와 서명자 명단 전체를 게재하였다.


장형 선생은 1910년대부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단동, 심양, 길림 등 서간도지역과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지만, 관련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장형 선생의 활동이 극히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만주와 국내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고, 또 ‘장세담’ 이란 이름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편집부>

전경환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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