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과연 애들이 보는 것일까? -극화(劇?)와 다쓰미 요시히로(辰巳ヨシヒロ).
만화는 과연 애들이 보는 것일까? -극화(劇?)와 다쓰미 요시히로(辰巳ヨシヒロ).
  • 전경환 수습기자
  • 승인 2015.09.03 01:23
  • 호수 13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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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만화를 볼 때, 마치 잘못을 하는 것처럼 부모님이나 선생님 몰래 봐야했다. 어른들은 만화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며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거야.” 라고 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만화는 오락물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만화가 단순히 오락물이며, 정말 애들이나 보는 것일까?

만화에서 ‘극화(劇?)’라는 장르가 있다. 국내에서는 만화방에 가면 박봉성, 이현세 등의 작가들이 필두로 한 스포츠, 정치, 성인물의 작품에 ‘성인극화’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만화방에 가서 아저씨들이 컵라면을 먹으며 성인극화를 읽고 있는 풍경을 보면 과연 만화가 어린이들만 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는 역시 오락물이다. 단지 연령층이 높아졌을 뿐, 만화방의 성인극화를 보면 만화가 오락물이라는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국내 만화방 성인극화와 별개로 사실 극화의 의의는 단순히 연령층의 확보만으로 이야기하기에 너무 부족하다. 그것은 스타일에만 의존한 오락물로서의 느낌이 강한 국내의 극화와는 달리 원래 다쓰미 요시히로(辰巳ヨシヒロ)가 창시하여 등장한 일본의 극화는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35년에 태어난 다쓰미 요시히로(辰巳ヨシヒロ)는 일본 만화역사에서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 데즈카 오사무(てづかおさむ)의 만화를 좋아하던 다쓰미 요시히로는 훗날 데즈카가 만들어낸 일본 만화의 표현기법을 더욱 심화시키고 발전시켰다. 물론 데즈카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등장으로 인해 일본만화는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청년과 어른들도 볼 수 있는 높은 연령의 독자층을 확보하게 된다.

데즈카 이전의 일본만화와 데즈카의 초기 작품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영향을 받은 캐릭터의 조형성과 움직임, 스피디한 연출에 집중하며 어린이들을 위한 컨텐츠로만 존재했었다면, 다쓰미 요시히로는 기존의 일본만화와는 다른 사실적인 스타일을 고안해냈다. 특히 칸의 배치와 독자가 칸을 보는 시간적 타이밍을 연구하며, 의식적으로 독자가 만화 안에서 시선을 유도하는 방법을 고안해내게 된다. 칸의 크기와 배치, 대사의 장단을 조절하며 독자들이 작품 속에서 흐르는 시간을 한층 더 사실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동안 어린이들이 주 연령층이었던 일본만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리얼리즘’을 부여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히노마루 문고에서 함께 활동하던 마쓰모토 마사히코(松本正彦)와 현실감 있는 만화를 지향하게 된다. 다쓰미 요시히로와 마쓰모토는 이러한 과정에서 이때까지 없던 심오한 주제와 권선징악을 탈피한 이야기의 만화를 그리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로 1957년에는 만화를 보는 주 연령층인 어린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학부모들의 비판이 거세진다. 이에 다쓰미는 자신의 만화를 기존의 만화와 구별하기 위해 ‘게키가(げきが)’ ? 극화(劇?)라고 명명한다.

극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가인 암울한 일본사회에서 탄생한 기존의 어린이용 컨텐츠로만 존재하던 만화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 암울한 시대를 겪어온 작가들에게 심오하고 현실적인 주제의 이야기를 앞세운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시대적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극화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였고, 그 시대상에 놓인 인간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것은 다쓰미 요시히로가 늘 가슴에 품고 있던 극화의 정신이었다.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사실적인 화풍과 연출 등으로 극화가 인기를 얻자 ‘극화풍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사이토 다카오(?藤隆夫) 같은 작가는 극화의 스타일 빌려 프로덕션 시스템을 만들어내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이 프로덕션 시스템은 고스란히 한국에 넘어와 만화방 성인극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다쓰미 요시히로는 극화의 정신이 결여되어있는 ‘극화풍의 작품’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다쓰미 요시히로의 작품 중 2009년 데즈카 오사무상 대상의 영예에 오른 『극화표류劇?漂流』라는 작품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작가 본인의 자전적 일대기를 그린 이 작품의 정체성은 다쓰미 요시히로가 늘 가슴에 품고 있던 시대와 함께했던 극화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는 진정한 ‘극화(劇?)’ 작품 이라는 것에 있다. 다쓰미 요시히로가 가슴에 품고 있던 극화의 정신은 이후에 시라토 산페이(白土三平)와 같은 정통 극화 작가들뿐만 아니라 이후에 등장하는 쓰게 요시하루(つげ義春)와 같은 전설적인 대안만화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만화가 단순히 오락적인 컨텐츠가 아닌 시대를 공유할 수 있는 매체임을 설파하게 된다.

안타깝게도『극화표류劇?漂流』는 국내에서 정식출간 되지 않아 접하기 힘들지만, 국내 만화 잡지 <새 만화책>에서 다쓰미 요시히로의 대표적인 단편들이 정식으로 소개 되어있다.  다쓰미 요시히로의 작품에는 그 시대와 개인이 느끼는 고뇌와 삶의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개봉한 다쓰미 요시히로의 전기를 그린 극장용 애니메이션 『동경표류일기』(원제 辰巳, Tatsumi)의 포스터 문구에 ‘어른들을 위한 진한 웃음과 감동’ 이라는 말이 참 와 닿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쓰미 요시히로의 극화작품을 접해보고 그 재미와 감동을 체험해보기를, 더 나아가 아직까지도 단순히 오락용 컨텐츠라는 인식이 강한 만화의 또 다른 가치를 깨닫기를 기대해본다.

권성주 만화연구소장

전경환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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