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주년 특집] 설립자 범정 장형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서 ①
[광복70주년 특집] 설립자 범정 장형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서 ①
  • 단대신문
  • 승인 2015.09.03 10:07
  • 호수 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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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의 독립운동 정신이 곧 단국의 도전 정신

꾸준한 노력으로 범정 선생의 독립운동 자료 발굴해 이번 답사로 이어져


독립운동가가 설립한 대학, 광복 후 최초의 4년제 정규 사립대학, 순수 민족자본에 의해 설립된 민족사학. 이는 단국대학교의 정체성이며 단국인의 자부심이다. 이런 우리 대학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설립자인 범정 장형 선생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범정 장형은 일제 강점기 때 압록강을 넘나들며 국내와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여 독립운동가에게 전달, 지원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사 분야의 권위자인 한시준(사학) 교수와 박성순(사학) 교수가 수년 전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범정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 자료 발굴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범정 선생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객관적 자료 발굴과 함께 현장을 확인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답사는 그동안 범정 선생의 중국지역 활동을 조사, 발굴에 중심적 역할을 한 한시준(사학) 교수와 박성순(사학) 교수의 안내와 설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번 답사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이번 답사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과 우당 이회영선생 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주관하여 광복 70주년 및 신흥무관학교 개교 104주년 기념 특별기획으로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이뤄져 답사의 의의가 범국가적 프로젝트로 한층 더 커졌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우당 이회영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일본 헌병대의 감시를 피해 신흥무관학교에 학생들을 입학시킨 활동을 한 장형 선생의 손자인 장호성 총장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같이 찾아 나선다’라는 공통점을 갖고 답사를 함께 했다.


이번 답사에 대해 장호성 총장은 “당시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동아시아를 제패한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불가능이 가능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설립자의 불굴의 도전정신을 우리 후학들이 계승하여 개인과 국가, 대학발전을 위한 마음을 다잡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 강조했다.


답사단은 지난 6월 7일 일요일 오전 10시 55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한국보다 1시간 늦은 중국 장춘공항에 현지 시각으로 11시 20분경에 도착했다. 길림은 2.8 독립선언, 3.1 독립선언과 더불어 3대 독립선언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됐던 곳이다. ‘대한독립선언서’는 1919년 2월 길림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작성하고 김교헌(金敎獻), 이시영(李始榮), 이상룡(李相龍), 김좌진(金佐鎭), 조소앙(趙素昻), 여준(呂準) 등 국내외 각지에서 활동하던 39명의 지도자 명의로 발표되었다.


길림에서 답사단 일행이 처음으로 찾아 간 곳은 길림시에 위치한 베이후아(北華)대학. 이 대학의 동아시아역사문헌연구소와 단국대 동양학연구소가 이날 오후 3시에 학술교류협약 체결식을 가졌다. 협약식은 한시준 동양학연구소장과 정의 북화대학 동아시아역사문헌연구원장이 각각 서명하였다. 한시준 원장은 “독립운동에 관해 연구할 것들이 매우 많은데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측의 문서나 자료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 학술연구에 어려움이 많다” 며 “ 이번 협약을 통해 그 같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 한다”고 말했다. 정의 북화대학 동아시아역사문헌연구원장은 “한중 양국이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공동연구를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무엇보다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하며 또한 매우 시급하다” 고 말했다.


교류협약 체결에 이어 일행은 길림에서 활동하던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 경찰들의 눈을 피해서 만남과 회의 장소로 활용하였던 길림시 북산공원을 방문하였다. 답사단은 북산공원을 나와 버스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육문중학을 방문하였다. 육문중학은 1917년에 설립되었고 당시 길림지역의 독립운동가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로, 진보적인 교사와 학생들이 활동하며 길림지역 사회운동과 학생운동을 주도한 명문학교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터는 같은 자리이나 콘크리트 건물로 개축되어 중국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김일성도 이 학교를 다녔으며 지금은 북한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상당수 재학하고 있다고 하였다.


답사단이 첫 날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곳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연설하다가 피체된 곳인 대동공장 터 였다. 이 곳은 본래 큰 정미소 였으나, 지금은 대형 상가 건물이 세워져 길림시 번화가로 변모해 있었다. 상해에서 활동하던 안창호는 만주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운동 단체의 통일과 유일당 결성을 촉구하기 위해 1927년 1월 14일에 길림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3일간 연설을 하였다. 연설회 마지막 날인 1927년 1월 27일에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인 경찰들이 연설회장에 들이닥쳐 체포되어 길림감옥에 20여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석방되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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