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딜레마
고슴도치 딜레마
  • 승인 2015.09.09 12:37
  • 호수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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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외톨이의 소리 없는 아우성

아티스트 블루벨벳의 <다가서면 멀어지는 꿈처럼>이라는 곡이 있다. 단조로운 피아노 멜로디가 2분 40초가량 흐르는 뉴에이지 음악인데, ‘다가서면 멀어 진다’는 인간관계의 모순을 ‘꿈’에 빗댄 듯한 제목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20세가 넘은 성인이라면 사람한테 데인 경험이 누구든 한 번쯤은 있다. 가족, 친구, 애인 등 우리 주변에는 애틋하지만 쉽사리 상처받을 수 있는 관계로 가득하다. ‘신뢰’란 상대방이 나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를 믿고 의지한다는 뜻이다. 앞선 사람들에게 상처를 수차례 받았음에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건 어쩌면 아직까진 인간에 대한 신뢰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만났지만 워낙 유별나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유독 다른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자기 방어가 강했다. 또한 항상 무리에서 엇나간 독단적인 행동을 일삼았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무리 주변을 맴돌았다. 한 마디로 ‘자발적 외톨이’였다. 어린 마음에 그 당시엔 체육시간에 혼자 운동장으로 이동하고 쉬는 시간엔 혼자 만화책을 읽는 그 친구의 자유로움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자발적 외톨이는 대학에 와서도 존재했다. 아니, 오히려 더 흔해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점점 줄어드는 학생총회의 정족수, 참가인원 부족으로 취소되는 학과 MT, 과거와 달리 호응이 없는 친목동아리…. 대학가의 고질적인 문제가 모두 자발적 외톨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느껴졌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함께’보단 개개인만의 독창적인 ‘따로’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듯 보였다.


심리학용어 중에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쇼펜하우어의 저서에 등장한 말로, 추운 날씨에 고슴도치들이 온기를 나누려 모였으나 도리어 서로가 가진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거리를 두게 됐다는 내용이다. 친밀감 형성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멀어지는 인간관계의 딜레마가 잘 표현됐다.


상처입기 싫어서, 혹은 온기를 나눌 필요성을 못 느껴서 딜레마에 빠진 고슴도치들. 현대의 고슴도치들은 아무래도 후자에 속한 것 같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온기만을 얻으려 잠시 ‘다가섰’다가 금세 ‘멀어지’며, 한 번 제대로 부대껴보기도 전에 쉽사리 겁에 질려 거리를 둔다. 무리나 집회에 참여하는 건 고사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 개인적인 상처가 많은 건지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건지, 필자 역시 딜레마에 빠졌다.


자발적 외톨이들, 겁에 질린 고슴도치들이 소리 있는 아우성을 내뿜는 대학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껴 웅크린 거라면 그 어려움 또한 혼자 끙끙 앓지 말고 함께 풀어나갔으면 한다. 딜레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고슴도치는 날카로운 가시에 갇혀 햇살이란 꿈을 보지 못할 것이다. <眉>

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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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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