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함께 했던 단대신문 73기 퇴임의 변
사람과 함께 했던 단대신문 73기 퇴임의 변
  • 단대신문
  • 승인 2015.09.09 12:41
  • 호수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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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기 이다혜(영어영문·4·휴학) 전 편집장


어떻게는 어느새가 됐고 이젠 ‘그때,’가 됐다. 과거에 대한 미련이 가장 미련하다지만, 그때,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이 그 순간인 줄을 이제야 알았다. 아쉽다. ‘단대신문’. 이년 전에는 연로하신 선배들이 ‘단대신문 1212 동문회’에 어떻게, 왜 모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전통이 우리 기수에게까지 꼭 이어지길, 손 꼭, 빈다.


편집장 제안이 떨어졌을 때 스승에게 물었다. ‘희망 진로도 아닌데…’라며. 그때 한소리 들은 것이 천만 다행이다. 그럼 학교는, 영문과는, 네 모든 경험은 희망 진로여서 했냐고 하셨던 잔소리가 달콤했다. 편집장직을 떠넘겼던 누군가에게 “당신, 정말 후회할 짓 했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아쉬워도 정말 행복하다. 편집장이 됐을 때 자리를 옮기신 국장님께 보냈던 메일, 답으로 받은 한편의 시 같았던 편지가 기억난다. “너희는 행운아다”라며 “후배들을 200여명 가까이 두었으니 나도 행운아인 셈이다”고 하셨다. 천신만고 하시고 내게 하시는 말이 후배 200명을 두어 행운아시라니, 그땐 몰랐다. 나도 이미 행운아였단 걸. 단대신문의 선배, 동기, 후배들과 함께할 기회가 온 것은 정말이지 좋은 운수였다.


앞으로 해보지 않고서는 ‘어떻게’라는 말을 내뱉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다시 하고 싶어도 못한다. 천 번을 물어도 다시 ‘함께’ 하고 싶다. 똑~같은 사람들이랑. 아- 이번 미련은 조금만 더 끌고 가야겠다.

 

■ 73기 이민지(국어국문·4) 전 취재부장


대학생활의 반인 2년 동안 학보사 기자였다. 그리고 그 중 절반은 취재부장이라는 감투까지 쓰고 보냈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그 시간 동안 전쟁 같은 마감을 치러냈고 많은 기사를 읽고 썼지만, 아직도 비어있는 흰 화면의 한글파일을 앞에 두면 어쩐지 조금은 막막해지고 만다. 의욕 충만한 수습기자일 때부터 임기가 끝난 지금까지도 글이라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조심스럽다. 이렇듯 한없이 부족한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받쳐주던 학보사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한없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지만, 개인적 바람으로는 남은 구성원들이 난 자리를 크게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떠난 이는 잊고 남은 사람들이 힘을 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일주일마다 12면의 신문을 만든다는 것은 희생도 많이 따르고 정신적·체력적으로도 많은 힘이 소모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껏 지켜본 후배들의 모습을 미루어 보건데, 선배들이 떠난 학보사를 훌륭히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상투적인 감사인사나 정에 대한 호소가 없는 참신한 퇴임의 변을 쓰고자 했었다. 하지만 끝자락에 서서 돌이켜보니 결국 남는 것은 옆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감정뿐이다. 2년 동안 낚은 것이 비단 기사거리 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있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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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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