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과연 예술인가?
만화는 과연 예술인가?
  • 전경환 기자
  • 승인 2015.09.09 22:05
  • 호수 13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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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게 요시하루(つげ義春)의 『나사식 ねじ式』.

 

 

전통적으로문학이나 영화 같은 매체는 흔히들 예술로 인식해왔지만 만화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특히 국내에서의 인식은 만화의 선진국인 일본이나 미국, 유럽과 비교해보면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화는 다른 예술 매체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예술매체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조차 초기에는 그렇게 인식하지 못 하였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언제부터 만화를 예술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쓰게 요시하루(つげ義春)라는 작가가 있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일본만화계에서는 데즈카 오사무(てづか おさむ)와 버금갈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작가로 평가를 받는다. 쓰게 요시하루가 초기 아동만화 뿐만이 아니라 장르물과 함께 다쓰미 요시히로 이후에 등장한 극화(劇?)까지 섬렵하여 방대한 만화 스펙트럼을 가진 데즈카와 동일 선상에서 평가를 받는 것은 아마 쓰게 요시하루가 만화계에 남긴 업적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단 일본 만화계뿐만 아니라 만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는 쓰게 요시하루가 1968년에 『나사식 ねじ式』을 발표한 것이다. 『나사식』이 발표되고 나서 일본 만화계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계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며 초현실적인 무드가 깔린 『나사식』을 보고 이것이 과연 만화라고 할 수 있는가? 라며 의구심을 가졌다. 만화는 원래 예술 매체임에 분명했지만 세간의 평가는 그렇지 못하였다. 그 세간의 평가가 바뀐 것은 바로 『나사식』이후 부터이다. 『나사식』이후로 데즈카가 구축한 일본만화의 시스템과 형식에 예술성마저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나사식』의 이야기는 팔에 메메해파리(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작품내에서만 등장하는 해파리)에게 물려 상처를 입은 주인공이 의사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마을 사람들에게 의사가 있는 곳을 물어보지만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전혀 사건의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의사가 있는 곳을 찾아가지만 그 기차는 이상하게 원래 있던 곳을 돌아온다. 기차에서 내린 주인공은 별 수 없이 다시 의사를 찾으면서 상인 아주머니를 만나 의사가 어디 있는지 찾으며 산부인과 여의사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긴타로 사탕을 가지고 사건과 연관 없어보이는 이야기를 한다. 결국 산부인과 여의사를 만난 주인공은 그 여의사와 하룻밤을 보낸다. 여의사는 주인공의 상처에 나사를 박아 치료해주고, 치료를 받은 주인공은 보트를 타고 다시 바다로 향한다.
이 모든 과정은 기존의 서사와 개연성을 찾아 볼 수 없다. 철저히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기호의 상징성과 비유를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한다. 전투기 아래 해변을 걷고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미지나 좁아터진 마을 골목길을 들어오는 기차, 안과의 간판에 그려진 수많은 눈동자들 같은 이미지들을 보라. 얼마나 기괴하고 초현실적인가. 그리고 주인공과 인물들의 대화는 퇴폐적인 것은 물론 굉장히 부조리하기까지 하다.
『나사식』은 아직도 여러 방향으로 해석되곤 하지만, 반복되는 순환구조와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아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의사를 찾아가기 위해 기차를 탔지만, 내린 곳은 자신이 원래 있던 마을이었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바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마지막에 다시 바다를 향해 간다. 팔에 남겨진 나사와 함께. 그리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이 나사를 죄면, 제 왼팔은 저리게 되었습니다."
쓰게가 자신의 꿈을 만화로 그린 이 부조리하고 비논리적인 이야기는, 만화가 기호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과 만화를 통한 초현실주의 실현에 의의가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만화가 진지한 예술일수도 있다.’ 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는 점이다.
『나사식』외에도 쓰게 요시하루가 남긴 단편들은 고전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이후에 나오는 수 많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이유는 쓰게의 만화는 극화에서부터 영향을 받은 리얼리즘과 동시에 서정성을 지닌 예술성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다른 단편들은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지만 그의 대표작 『나사식』은 국내 만화 잡지 <새 만화책>에 정식으로 소개 되어있으니 한번쯤 찾아서 감상해보길 바란다.

권성주 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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