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 경비원 이관배 씨 "예술대 경비실에서 피어난 문학의 꽃"
예술대 경비원 이관배 씨 "예술대 경비실에서 피어난 문학의 꽃"
  • 김수민 기자
  • 승인 2015.09.15 11:17
  • 호수 13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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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그리워 하며 남긴 글이 시가 되어 어느새 60편

우리 대학 천안캠퍼스 예술대학 에서 11년째 근무 중인 ‘시 쓰는 경비원’ 이관배(71세·예술대 경비원) 씨. 투박한 경비실 한편에는 작은 옷장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이 씨의 보물창고다. 그 보물창고엔 구겨지고 손때 묻은 종이에 꾹꾹 눌러쓴 수십 장의 시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1년 전부터 손에 펜을 쥐게 됐다는, 이 씨의 남다른 사연을 들어봤다. <필자 주>


“아이고, 반갑습니다. 그런데 내가 뭐 아는 게 있어야 인터뷰를 하지…” 머쓱한 말투에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가 처음 건넨 말이다. 하지만 이내 경비실 곳곳에서 종이 여러 장을 찾아 건네며 시를 쓰게 된 사연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 씨의 시는 삼촌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됐다. 어렸을 적 삼촌과의 추억이 많았던 그는, 삼촌을 “한없이 너그럽고 따뜻한 분”이라 회고했다.

이 씨의 삼촌은 1922년, 나라가 암울했던 시기에 태어나 외전과 6.25전쟁으로 계속된 군 생활을 했다. 이 씨가 9살이 되던 해에 삼촌은 6.25전쟁으로 북파공작원이 돼 북으로 넘어갔다. 그 후 60년이 지나도록 삼촌의 소식 을 알지 못했는데, 작년 7월 삼촌의 전사통보 소식을 듣게 됐다. 삼촌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 때 마다 이 씨는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지 못했다.

안타깝게 전사한 삼촌을 회상하며 작년 9월, 펜으로 추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글은 군대에서 편지 두 통 써본 것이 전부였던 이 씨. 하지만 시를 쓴지 1년이 채 안 된 지금, 어느새 60여 편의 작품을 완성했다. 삼촌을 그리워하며 쓴 △삼팔선의 봄 △잊을 수가 △먼 훗날 등 삼십 여 편은 엮어서 시집으로 묶었다.  그는 “기본 상식도 없이 마음대로 끼적인 것이 나의 시다. 진심을 담은 시를 현충원에 모신 삼촌의 위패 앞에서 읽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김지훈(문예창작) 교수의 조언으로, 이 씨는 고향, 자연, 사랑 등의 좀 더 다양하고 폭 넓은 소재의 시를 쓸 수 있게 됐다. 김 교수는 “경비원 아저씨의 시에는 삼촌에 대한 그리움과 사무친 한이 서려있다”며 “문학이 사람의 정서를 치유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이 씨는 김 교수의 도움으로, 국내 여러 공모전과 백일장에도 시를 투고하고 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 씨는 “문장력도 좋지 못하고 부족한 글인데 우리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줘서 부끄러울 뿐이다”라며 “시 쓰는 일을 취미로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의 작품을 읽은 여한솔(문예창작?3) 씨는 “아저씨가 쓰신 시를 보여주실때마다 먹먹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한다”며 “아저씨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고 답했다.

본지의 특집 면에서는, 이 씨의 대표 시들을 수록했다.

<복숭아 이야기>

하나님께서는 복숭아 농장을 하시고
복숭아를 따서 맛있게 잡수셨지요
너무나도 맛이 좋아 한 개를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지요
땅에 복숭아는 하늘의 기를 받아 둥글고 예쁘게 자랐지요
사람들은 탐스럽고 맛이 좋은 복숭아를 맛있게 먹다가
그만 목에 걸렸지요 이것이 바로 목 밑에 복숭아 씨 지요
당황한 끝에 허리를 굽혀 빼려고 했지만 빠지지 않았어요
이 냄새를 알아차린 사탄은 발목을 물었어요
급히 침을 뱀에게 뿌려 침독에 뱀은 죽고 말았어요
물린 상처는 자국이 생겨 복상 뼈가 되었어요
이것을 알고 있는 복숭아 애벌레는 맛있고 무르고 약한 곳만 골라
예쁜 복숭아를 파서 먹는 거요
사람들은 낮에도 먹고 여름날 시원한 밤에 먹었지요
웬일인지 벌레와 복숭아를 먹으니 약효가 최고지요
하늘의 기를 받아 땅의 기운과 인간이 삼위일체지요
이것이 신비과일 하나님과 인간만이 먹을 수 있지요
다른 신 들은 먹을 수 없어 제사상에 올라가지 않는답니다.


<삼팔선의 봄>

총성이 올리고 병사는 잠들었네
꽃이 피어 땅에 떨어지네
제비꽃이 되어 피고 지고
육십이 넘었네

찾는 이 없네
차라리 새가 되어
제비처럼 날아가
고향 땅 처마에 집을 지을 것을……

철책선 넘어 병사는 잠드네
이슬이 되고 안개가 되었네
구름은 바람 불어 남북을 오가는데
차라리 구름 되어 비가 되어
고향땅 앞마당 흠뻑 적셔줄 것을……

 

<국민학교 가던 날>

아홉 살 되도록 학교 못 가 울던 날
짚 덤불에서 뒹굴며 놀았네
석구, 구버는 이름표 밑에 콧수건 달았네
부러워 집에 와 밥도 안먹고 울었지
삼촌이 물었네
너 왜 울어?
나이 적은 동무는 학교에 갑니다
학교 가고프면 밥 먹어라 내일 학교 보내줄게
존경의 대상 삼촌 그 후 전쟁터로 갔지요
십 수 년이 지나 오실 날만 기다리다
저도 이제 백발이 되었네요
기다림도 수 십 년
00지구전사 청천벽력 같은 일이요
기다림과 희망도 끝이구나!

김수민 기자
김수민 기자

 5213190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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