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13. 술과 친교의 상관관계
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13. 술과 친교의 상관관계
  • 배한올(영화·15졸)
  • 승인 2015.09.15 17:24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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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를 위한 술인가, 술을 위한 친교인가

새 학기 혹은 학기 초. 묘한 들뜸이 느껴지는 탐색전. 하지만 아직은 어색한 우리 앞에 나타난 술. 어색하던 분위기가 술이 술술 들어가면 이내 부드러워진다. 늦은 아침, 눈을 떠보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어젯밤의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숙취에 치를 떨며 강의실에 들어가는데. 안면이 전혀 없는 누군가가 내게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누구세요?” 이런 흑역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술로 친교를 쌓으려는 우리. 우리는 왜 술 없는 친교를 어려워할까? 술과 친교, 그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술이 없는 친교는 아주 이성적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린다. 이 이성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으며, 우리는 너무나 지극히 사회적인 인간이기에 관계 속에 편견 혹은 판단이 들어간다. 거르고 걸러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지만, 이 단계를 진행시킬 용기가 없을 수도 있다. 혹은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이때 술의 힘을 빌린다. 술을 먹는다는 것은, 약속이다. ‘우리 이제 민낯을 보여주자’라는 약속. 술이 들어가면 우리는 아주 용기가 넘친다. 넘치다 못해 열정적이고 감정적이고 과장된 행동을 하게 된다. 술을 먹는 순간 우리가 평소였으면 친해지기 위해 했어야 할 그 몇 가지 단계들을 넘기고 최종 관문으로 간다. 우리는 어느새 친해진 것이다. ‘용기 있는 자는 친구를 차지한다’

익은 포도를 발로 으깨 놔두었더니 놀라운 액체가 되었다. 하나의 성질에서 다른 성질로 변한 술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해방의 또 다른 이름이다. 술이라는 손이 인간의 내면을 휘젓는다. 그 한 번의 휘저음으로 내면은 질서를 잃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술이 가진 유일한 효력은 사물의 일반적인 상태, 즉 자연계의 질서를 엎어버리는 데에 있다고 단정했으며, 이러한 전복성을 띠고 있는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는 견해를 가졌다. 술은 이성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자신의 평소 모습을 판단하기 위한(이것이 위험한 사람을 걸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성의 질서에서 해방된 것이다.

여럿이서 먹는 술자리, 특히 학기 초의 개강 총회나 동아리 환영회와 같은 술자리는 종교의식과 비슷하다. 술은 인간을 물아의 경지로 몰아넣는다. 집단이 되면 이제 이성 해방의 차원을 넘어 술은 체험의 차원으로 넘어온다. 우리는 현실에서 원하지만 절대 불가능한 완전한 결합(종교적 차원의 합일)이라는 체험을 술을 빌어하게 된다. 외로움은 온데간데없어지고, 2002 월드컵 붉은 악마가 되어 시청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술은 이처럼 친교에 있어 두 가지 즐거움을 준다. 첫째, 과정을 생략한 빠른 친교. 둘째, 술자리 자체가 주는 합일의 쾌감. 하지만 미셀 드 몽테뉴는 “술 취함은 몰상식하고 난폭한 악행, 육체를 교란시키고 무디게 만든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성이 차단되고 육체가 교란된 상황에서 서로를 인지하게 되어 왜곡된 친교를 만들 우려가 있다. 무질서와 무질서가 만나는 것에도 의미가 있지만  이것이 일상일 수는 없다. 이는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과정의 삭제와 주체성의 상실이다.

친해진 것은 좋은데, ‘친해진 것’만 남은 상황이 과정의 삭제이다. 영화 <클릭>을 보면 주인공이 결과만을 중시한 나머지 리모컨을 통해 삶의 과정은 삭제한다. 초반에는 그것이 아주 즐겁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운 일이 된다. 술은 이처럼 빨리 도착지로 데려다줄 수는 있지만, 너무 빨라 바깥은 볼 수 없게 만든다. 도착했지만, 친교 그 자체가 여행임은 잊게 된다. 친해진 상대가 사실은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결국 술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주체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술이 관계를 돕는 것이 아니라 술을 위해 관계가 존재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 사이에 존재하던 친교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술을 먹는 순간의 쾌락만이 남게 된다. 그래서 술자리는 새벽의 끝에 불어오는 찬바람과 같은 허무함을 남길 수 있다. 로크는 술 취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술잔에 대한 사랑이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힘을 발휘하는 메커니즘(종속관계라 정의할 수 있는)이고, 이 걷잡을 수 없는 마력은 술을 마시려는 행동과 의지(또는 본인의 의지가 아닐 수도 있는)를 억제할 수 없도록 압박하고 있다” 술은 마치 얌전한, 나에게 종속된 어떤 것처럼 고분고분하게 존재하지만, 방심하는 순간 돌변한다.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는 “인생은 이성적이지 않을 때 더 아름답다”고 말했다. 술은 우리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만들곤 한다. 대학시절의 즐거웠던 경험을 떠올리면 술에서 시작되는 영웅담이 혹은 흑역사가 다수이지 않은가. 친교는 ‘친밀하게 사귐’이라는 뜻이 있고, 사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사귐’이라는 뜻이 있다. 우리의 술자리는 친교일까 사교일까. 진정한 친교를 위해 술에 목줄을 채워라. 그리고 술을 길들여라. 슬램덩크의 대사처럼, 술은 우정을 거들 뿐.

배한올(영화·15졸)
배한올(영화·15졸)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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