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서의 자기 표현
만화에서의 자기 표현
  • 전경환 기자
  • 승인 2015.09.16 23:12
  • 호수 139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사(私)만화와 아베 신이치(安部?一)

 

문학에서 사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다. 개인의 사적 체험을 소재로 내면 문제를 다루는 형태의 소설이다. 사소설에는 자기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뚜렷하다. 때로는 사색적이고 때론 냉소적이기도 하다. 문학뿐 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이러한 표현 형태를 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일본영화의 거장 중 한명인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나 국내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그렇다. 만화에서도 이러한 개인의 사적체험과 내면 문제를 다루는 극화의 하위 장르가 있다. 전에 소개했던 쓰게 요시하루가 사소설의 형식을 만화에 도입하여 처음 시도하였고, 그 후 극화 계보의 많은 작가들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私)만화다.

아베 신이치(安部?一)는 사(私)만화의 1인자라고 일컬어진다.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아베 신이치는 만화 잡지 <가로 ガロ>를 통해 창작활동을 펼쳐나가는데, 쓰게 요시하루와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영향을 받아 자시 자신을 주체로서 등장 시켜 자신과 주변의 모습과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냈다. 아베 신이치가 사만화의 1인자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모습과 주변으로부터 느껴지는 일상의 리얼리티에서 나오는 리얼리즘의 정수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아베 신이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리얼리즘은 극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리얼리즘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좀 더 생생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 아베 신이치는 일상의 리얼리티를 칸 안에 세심하게 담아내고 있는데, 화면의 구성에 있어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마치 일상생활에서의 일어나는 순간순간을 화면 안에 아주 섬세하게 담고 있는데, 매 장면 장면마다 공간과 그 공간에서 흐르는 순간의 단면을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작가는 드물다. 아베 신이치의 만화에서 이 처럼 생생한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는 원천은 아베 신이치의 독특한 작업방식에서 나온다. 그는 자신이 그림을 못 그린다는 이유로 인해 매 장면마다 사진을 하나하나 찍어 그것을 보고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방식을 택했다. 때문에 화면 안에 생생한 리얼리티를 담아낼 수 있었다.

 

아베 신이치의『무뢰한 밤, 그림자 無?の面影』(1972년 4월, <가로 ガロ>)

아베 신이치가 화면 안에 담아낸 공간과 인물의 모습은 낯설지 않고, 만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도 마치 그 공간 속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질 것이다.

 

 

 

만화를 포함한 영화, 애니메이션 등 화면을 다루는 예술매체에서 화면이 담아내야 하는 것은 정보와 감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일상의 리얼리티를 표현해야하는 사(私)만화에서는 정보보다는 감정을 더욱 세심하게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베 신이치는 화면 속에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낸다. 하나하나 찍은 사진을 통해 화면의 구도를 정하고, 정해진 구도에 풍경들과 인물들을 넣어 화면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조절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것만으로는 아베 신이치의 만화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전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특별한 내용이나 그냥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라도 아베 신이치의 펜을 거치면 이상하게도 인물들의 얼굴과 표정이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거나 공허한 골목길의 풍경들에서 쓸쓸하거나 고독한, 일종의 슬픔 같은 감정을 생생히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쓸쓸함과 고독이 내려앉은 시간과 공간 속으로 만화를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게 된다. 아베 신이치의 만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아베 신이치가 활동하던 시대와 살고 있던 공간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거나 공유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화면 안에 담아낸 시간과 공간속에 스스로를 온전히 밀어 넣으며 담담하게 그 감정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아베 신이치는 만화를 통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적인 생활의 영역을 만화에 불러들인다. 그 곳에는 판타지와 로맨스, 드라마와 같은 과장이나 허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느꼈던 다양한 감정을 담담하게 그려낼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아베 신이치의 만화에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오락적인 재미를 즐기기 위해 만화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에게는 아베 신이치의 만화에 어떠한 흥미와 재미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밀접한 생활로부터 시작되는 삶에 대해 고독과 슬픔 등의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 삶의 무게를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은 삶에 대한 작은 위로다. 아베 신이치의 만화는 다양한 감정의 편린들을 생상하게 전달하며 작품의 주체인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 만화를 보는 독자들에게도 작은 위로를 건넨다. 국내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단편 『무뢰한 밤, 그림자 無?の面影』가 만화잡지 <새 만화책>에 정식으로 소개 된 적이 있으니 한번 찾아보기를 바란다.

“만화를 그리면서 나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면 그걸로 됬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게 '사(私)만화'라고 생각해요.” - 아베 신이치.

아베 신이치가 작품을 발표하던 시대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아베 신이치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켜보며 삶에 대한 위안을 얻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아베 신이치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이 지닌 가치는 독자들에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권성주 만화연구소장

전경환 기자
전경환 기자

 32154039@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