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비오는 날
  • 홍다경(법학·2)
  • 승인 2015.09.22 20:18
  • 호수 13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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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비 온 뒤 맑음’이라는 구절로 위안을 받는다. 인생에 폭풍우가 쏟아진다 해도 그 뒤에 언제나 무지개가 뜨고 맑은 하늘이 우릴 맞이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현재의 고난과 역경을 버티게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이 구절을 되새기며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내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나의 꿈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바뀌었다. 초등학생 때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고, 중학생 때는 역사학자, 통역가, 고등학생 때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많이 바뀐 나의 꿈들을 위해 나의 진로 설계도 그에 맞게 변했지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의 과정이 있었다. 바로 ‘유학’이었다.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나의 오랜 바람이었다.

대학교에 와서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다. 고등학교 때 전공으로 독일어를 공부했던 것과 대학교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 내가 독일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독일로 출국하던 날, 가족과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많이 슬프기도 했지만 그 마음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예상했던 대로, 모든 것이 굉장히 새로웠다. 나와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나와 다른 문화에 익숙한 친구들이 어색하고 불편하기 보단, 흥미롭고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름 괜찮은 ‘폭풍전야’였다.

감기몸살로 착각하고 상비약을 꺼내 먹은 지 이틀되던 날, 나는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리고 내 몸에 몇 가지 이상이 있어서 큰 수술이 불가피 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 귀국해서 수술을 받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악화되어 비행기마저 타지 못하는 상황이라 타지에서 혼자 수술을 받기로 했다. 늘 새로운 나날들이 나를 반겨주고, 하루하루가 즐거울 것이라는 희망으로 독일에 왔는데, 나를 맞이한 건 통원치료와 수술과 입원이었다. 꽤 무섭고 외롭던 시간이었다. 내 인생 첫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고, 회복도 그럭저럭 잘되고 있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번 폭풍우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지금껏 가장 힘들고 아픈 시간이었지만, 집이나 학교보다는 병원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의사, 간호사와 이야기한 시간이 더 많았지만, 내 인생에 걸쳐 그만큼 의미 있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마음에 여유를 갖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드디어 나는 ‘홀로’에서 ‘스스로’가 되었다.

이제 나는 비 오는 날이 기대된다. 언제 맑은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냥 비 오는 날 자체를 좋아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이 되어 내 삶에 영감이 될 빗소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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