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사회
술에 취한 사회
  • 승인 2015.10.06 13:37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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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김에’라는 이름의 면죄부

이달 초에 울산에서 의붓딸을 성폭행한 A씨가 징역 4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처벌 과정에서 음주 과실이 참작됐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접했을 당시, 이전의 음주성범죄 처벌에 비해선 중징계를 받았다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말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라는 주류 광고 슬로건들의 영향일까, 우리 사회는 유독 술에 관대하다. 실수를 저지르면 ‘술김에’라는 이유를 말버릇처럼 붙이기도 한다. 술이 일종의 면죄부가 되는 셈이다. 술에 취해 저지르는 실수 경험담들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된다. 연예인들의 주량 또한 매스컴에서 좋은 토크 소재로 다뤄지며, ‘술에 취해’라는 가사를 활용한 노래들도 심심찮게 들린다.


대학사회 또한 흥과 술에 취하길 권장한다. 축제 때 빚어지는 음주 사고들은 대학신문에 주요 기사로 다뤄지는 고질적이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이다. 금주캠퍼스와 같은 캠페인이 실행되기도 하지만 일시적일 뿐, 금세 시들해지고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편 올해 우리 대학의 축제에는 금주캠페인을 시행한 천안캠퍼스와 그렇지 않은 죽전캠퍼스의 모습이 대비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분위기를 띄우고 친목을 도모하는 술의 순기능도 인정한다. 술은 사람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수단이다. 인간의 내면까지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수많은 대작들이 창작가의 ‘술김에’ 탄생하기도 했다. 과거 이태백 시인은 술에 취해 강가에 비친 달의 모습에 빠져 죽지 않았던가. 이처럼 모 아니면 도, 흑과 백의 이면에 쌓인 술 이야기는 어떠한 방면으로 다뤄도 뻔하지 않고 신선하다.
쭑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취해 음주가 각종 면죄부로 적용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음주범죄의 경우는 특히 엄격하게 처벌돼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음주성범죄 솜방망이 처벌 기사를 접한 후 느낀 이상한 안도감의 이유를 깨달은 직후, 독한 소주보다 강한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역할임에도 어느 샌가 취해 있었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이다.


신입생 OT도, 축제도 모두 끝난 이 시점에선 술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이 크게 빚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술 문제는 이와 무관하게 대학에서도, 한국 사회 내에서도 그 고질적인 원인으로 끊이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색다른 칼럼들도 무수히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태백이 울던 달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취해있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 그럼에도 그는 빠져버렸지만, 현대 대학생들은 허우적거리지 않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소주병과 잔에 비친 찰랑한 일렁임이 미묘하다.      <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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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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