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쓸쓸하고 가난한 존재를 위한 시인의 넉넉한 ‘백 허그’
세상의 모든 쓸쓸하고 가난한 존재를 위한 시인의 넉넉한 ‘백 허그’
  • 단대신문
  • 승인 2015.10.06 13:40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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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백석, 『정본 백석 시집』
▲ 저자 백석/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일 2007년 2월 12일/ 페이지 350쪽

가을이 시작되면 나는 두 가지를 옆에 둔다. 하나는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 나그네’이다. 또 하나는 ‘백석의 시’이다. 둘 다 겨울이 잘 어울린다. ‘겨울 나그네’는 겨울에 길을 떠난 청년의 아픔을 다룬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백석의 시 역시 그의 작풍과 시어들이 겨울풍경에 잘 어울린다. 그러나 나는 가을에 이들을 찾는다. 겨울이 갖고 있는 혹독함, 생명의 정지상태가 주는 처연함을 미리 내 정신에 숙지시켜 겨울을 날 힘을 얻으려는 것이다. 백석 시인은 그런 존재이다. 나라를 뺏긴 우리 겨레의 상처를, 겨울처럼 앙상한 우리의 역사를 시로써 보듬고 쓰다듬어주는 시인이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 어쩐지 쓸쓸한 것만 오고 간다 / (중략) /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 (중략) /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 (중략) / 이 흰 바람 벽엔 /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중략) /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후략)”  (「흰 바람벽이 있어」 중)


나는 이것이 백석의 시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기억해야 할 자신과 자신의 이웃들의 삶에 대한 올바른 자세라고 믿는다. 우리는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들이 사실은 가장 ‘귀해하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임을 자각하는 데서 세상살이의 기틀을 짜야 한다.  백석은 식민지에서 태어나 한글로 시를 만들고, 분단의 톱니바퀴에 찧어 목숨을 잃었다. 1995년 경 북한에서 쓸쓸히 죽었지만 남한은 1986년까지도 그의 존재를 외면했다. 그 역시 쓸쓸한 존재이다. 문학사에 산채로 매장된.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중략)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전문)


비겁한 현실도피가 아니라 가장 깨끗한 곳에서 다시 세상을 살아내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애처롭다. ‘나타샤’는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너’일 수도, 사랑의 이름으로 더욱 이기적으로 변한 ‘너와 나’일 수도 있다. 사실 백석의 시는 평안도 방언을 애용한다. 거기에 겨레의 먹거리와 계절, 그리고 풍경을 하나로 묶어내는 데서 탁월한 미학적 가치를 획득한다. 이 책은 백석의 지독히도 어려운 평안도 방언을 들을 자상하게 해독해주고 있다. 저자인 고형진 교수의 백석에 대한 애정과 천착의 덕분이다. 이제 캠퍼스에 가을이 왔다. 젊은 그대여, 우리 시를 읽자. 
 

김남필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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