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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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선(커뮤니케이션·3)
  • 승인 2015.10.06 14:42
  • 호수 13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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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젠장. 나 10년밖에 못살아” 그녀의 첫 마디였다. 누군가 그런 말을 듣는다면 삶의 끄트머리를 준비하는 머리 희끗희끗한 장년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 모습을 연상하기엔 목소리가 지나치게 쾌활하다.
“그래, 그래서 기분이 지금 어때?” 손을 들어 볼의 피부를 잡아당긴다. 잡티 하나 없는 완벽한, 라틴 미인의 그것이다.
 “몸이 너무 가벼워서 100m를 7초 만에 뛸 거 같고, 브라 사이즈는 세 컵이나 올라갔어. 갑자기 스무 살 애송이들이 말을 거는걸 보니, 괜찮아. 멋져. 완벽해. 밥 안 먹고, 섹스 안하고… 그냥 맨몸에다 뇌만 심을 수도 있어. 그럼 훨씬 오래살 수 있지. 그런데 30년을 마네킹으로 사느니 10년, 할거 다 하고 갈란다”
 “옵션이 다 달라?”
 “달라. 음식만 먹거나, 섹스만 하거나, 둘 다 하거나. 난 둘 다 할 거지만”
 “두개 다?”
 “그래. 둘 다” 리타는 킬킬대며 웃었다. 그래서 칠순하고도 다섯을 더 나이 먹은, 데일라는, 그녀가 가진 모든 전 재산을 털어 리타와 같이 인공 몸을 사기로 결심하였다. 단 십년, 아니, 하루를 산다 한들 무엇이 아쉽겠어?

#2
케이든은 “야! 저기 여자들 내가 다 꼬시고 온다!” 고 말해놓고는 몸을 흔드는 인파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잘 모르는 음악의, 쿵, 쿵, 하는 진동에 따라 몸을 하릴없이 흔들거렸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그 이름 모를 여자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온 듯 했다.
“안뇽!” 이석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갤 돌렸다. 신이시여. 그 누가, 이토록 눈부신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단 말인가? 완벽한 라틴 미녀를 누가 거절할 수 있다고?
“아, 정말이지, 내 연락처를 알아야 해?” 그것이 미녀가 던진 질문이었다. 세상은 곧 멸망할거고, 우린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겠죠. 그러니, 우리 죽기 전에 섹스라도 해서 유의미한 생을 증명해 봅시다.  
 “그냥 같이 자면 되는 거 아냐?” 이석은 머릴 긁었다. 그는 여신의 분노에 달리 변명할 궁색한 말조차 없었던 것이다.
 “어…그래”
 “그래, 젊은이. 내 말을 들어야지” 어둑어둑한 침실조명을 받으며, 미녀는 미소했다.
“벗어” 이석은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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