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비’ 김샘 대표 : 역사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평화를 외치다
‘평화나비’ 김샘 대표 : 역사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평화를 외치다
  • 전경환 기자
  • 승인 2015.10.07 10:35
  • 호수 13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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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더라도 깨끗하고 행복한 사회, 그것이 진정한 평화”

 

Prologue
1930년대 후반, 일본은 침략전쟁을 전개한 시점에서 군 위안소를 만들어 식민지 및 점령지의 여성들을 연행해 강제적이고 반복적인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다. 이는 여성 인권을 유린한 국제법상 위법은 물론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사회의 멸시적인 분위기와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듯했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이 있다. 이 청년들은 ‘평화나비’라는 단체로 수요시위 참여는 물론 페스타, 콘서트, 소녀상 건립, 전면광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위안부 문제가 사회 전면에 부상해 기성세대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다양한 캠페인을 기획·추진하며 할머니들의 의지를 잇고 있는 대학생단체 ‘평화나비’의 대표 김샘 씨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 씨는 취업준비나 학점관리 때문이 아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1년간의 휴학생활을 거치고 직접 발로 뛰며 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달 13일 숙명여대 앞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위안부 문제와 대학생, 진정한 평화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봤다.


▶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건 언제부터였나.
처음부터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2학년 재학 중 우연한 계기로 후배와 함께 광복절을 맞이하는 대규모 수요시위에 참여하게 됐다. 거센 비가 몰아치는 궂은 날씨에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위안부 상황에 대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날씨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 감명을 받았고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날의 시위를 잊지 못해 지금까지도 활동을 함께하게 됐다.
 
▶ 평화나비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 단체는 많았지만, 그들의 활동은 ‘일본군 문제’라는 의제를 가진 정기적 활동이라기 보단 역사나 여성학 관련 동아리 활동의 연장선에 가까웠다. 더불어 지난 2013년, 대규모 행사였던 ‘숙명나비 콘서트’가 마무리되자마자 뜻을 함께했던 대학생들이 흩어지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지난해, 콘서트 참여자 및 활동가를 모아 ‘평화나비 콘서트’를 기획했다. 콘서트 이후 기획단과 서포터즈를 기반으로 평화나비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다.

▶ 대학생을 타깃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대학생이 바꿔왔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대 사회에서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평화나비가 대학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이제는 이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었다. 요즘은 뜻을 더욱 넓히기 위해 청년과 유아 부문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멘토링 사업을 기획 중이다.

▶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표 출마 당시 전국순회를 했다고 들었다.
서울을 시작으로 경기, 충청, 춘천, 진주, 대구, 부산에 이어 제주까지 전국의 평화나비를 방문했다. 전국순회를 하며 각종 캠페인 및 행사진행을 도왔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평화’라는 의제를 구체적인 실행과제로 설정해 실행하고 있어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다양한 지역의 대학생이 한마음 한뜻으로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이 외침이 끊임없이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에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 일본에 한국 평화기행을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어땠나.
조국의 불명예스러운 일을 이야기한다는 건 민감한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일본 대학생은 그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 오사카 지역 대학생들을 만나봤다. 그들의 대답은 예상외였다. 비난하고 회피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지난 역사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싶어 오사카 수요시위를 함께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 어디에도 전쟁을 원하는 청년은 없으며, 평화를 함께 만들어갈 동반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희망을 안고 돌아왔다.

▶ 평화나비 활동 전에는 어떠한 대학생활을 했었나.
1, 2학년 재학 당시엔 ‘스무 살의 자격’이라는 체험활동 연합동아리를 했다. 여름에는 9박 10일의 테마기행을 맡아 진행했는데 기획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고, 순천만과 제주도를 여행하며 역사 공부까지 성공적으로 병행했다. 이 시점부터 의제를 잡아 대학생 행사 기획을 시작하게 됐다. 3학년 재학 중에는 학생회장을 맡아 OT는 물론 매년 가는 학술기행을 준비했고, 신입생들의 학교적응을 도왔다.

▶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의 에피소드를 꼽는다면.
평화나비 콘서트 당시 김복동 할머니께서 무대 위에 서 계셨다. 불편하시지는 않을까 걱정돼 여쭤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에 눈물을 쏟을 뻔했다. 할머니께서는 수많은 대학생에게 고마운 마음과 존중의사를 표현하고 싶어 앉지 않았던 것이다. 또, 길원옥 할머니께 3만5천개의 서명지를 A4용지 박스에 가득 채워 전달해 드렸는데, 청년인 내가 들기에도 무거운 박스를 무릎에 올려 꼭 끌어안고 내려놓지 않으셨다. 박스의 무게만큼 수많은 사람의 응원이 할머니들께 위로가 되고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평화는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가.
‘평화’라고 하면 보통 평온하고 잔잔한, 추상적이고 안정적인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평온한 이미지는 평화의 일부일 뿐 갈등이 있다면 그 갈등의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평화라고 생각한다. 침묵하는 불행한 사회보다는 시끄럽더라도 깨끗하고 행복한 사회, 그것이 진정한 평화의 사회일 것이다.

▶ 위안부 문제 외 대학생들의 관심이 필요한 사회이슈, 역사문제가 있다면.
대학생들의 관심이 필요한 사회문제는 세월호 진상규명, 임금피크제, 교과서 국정화 등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문제부터 해결하고자 마음먹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문제에 관심을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꼭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세월호 진상규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잘 운영되는 것이 단기적 목표다. 장기적 목표는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이며 이는 지금의 나에게 무척 중요한 과제이다. 이 외에 최종적인 목표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단정 짓기에는 이른 나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고 싶냐’라는 질문으로 해석한다면 ‘최대한 열심히’ 살고 싶다. 그냥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닌 최대한 열심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싶고, 싸우고 싶고, 외면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불안을 떨쳐버려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궁구하라.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휴학 당시 지인들은 혹여나 내가 뒤처지지는 않을까,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목표가 확실하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또한 같은 대학생의 입장에서, 진정한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다 같이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화란 누가 찾아주는 것이 아닌 우리 청년들의 손으로 이뤄나가야 하는 만큼 관심을 기울여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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