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로서 세상과 화해하는 방법.

마츠모토 타이요(松本大洋)의 작품세계 전경환 기자l승인2015.10.06l수정2015.10.07 10:42l1399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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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90년대 이후 일본 만화계에서 마츠모토 타이요(松本大洋)만큼이나 ‘천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작가는 드물 것이다. 88년에 데뷔한 마츠모토 타이요는 명료한 스토리와 더불어 마치 돋보기 렌즈를 통해 보는 듯한 감각적인 앵글을 구사 하는 화면, 리듬감과 속도감을 잘 살려내는 컷의 배분을 활용한 수준 높은 연출력을 통해 만화가 줄 수 있는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했다. 이 뿐만 아니라 쓰게 요시하루나 하야시 세이이치로 이어지는 일본 대안만화에 영감을 얻어 이미지와 기호의 상징성을 이용한 일본 고전만화의 표현형식을 받아들여 타이요 자신만의 색깔로 잘 버무려 놓고 있다. 이런 마츠모토 타이요의 신선함은 당대 일본 상업 만화가 지니지 못했던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철콘 근그리트』, 『핑퐁』같은 그의 대표작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일본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그를 90년대 이후 일본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가 ‘속도와 천재성’으로 대변 되는 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이다. 타이요 만화가 담고 있는 주제의식은 문학적 성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유머’다.

여기서 ‘유머’란 모차르트와 괴테의 유머 의의와 일맥상통하다. 아마 문학 좀 읽었을 법한 사람들은 눈치를 채고 생각나는 문학 작품이 있을 것이다. 바로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호밀밭의 파수꾼』과 더불어 컬트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의 주인공 하리 할러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며 내적으로 분열된 남자이며,  홀로 자신의 서재에서만 생활하는 지적인 개인주의자다. 그는 스스로 '황야의 이리'라고 이름을 짓는다. 이 이름이 그의 내면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반은 인간 반은 이리인, 외관상 시민적이지만 사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살의 충동으로 자신을 괴롭힌다. 이런 비참함에서 하리를 구출하는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데, 헤르미네와의 만남과 아편을 사용하여 밤을 지새우는 이른바 '마법 극장'의 체험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정신은 두 측면(인간과 이리)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끝없이 많은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리는 앞으로의 삶을 장악하려는 희망찬 전망으로서 '웃음'을 택한다. 그는 삶과 그 삶의 불충분함을 ‘유머’로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황야의 이리』에서 말하는 모차르트와 괴테의 유머 의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적의와 냉소, 경멸의 의미가 담겨있는 풍자와 조소의 웃음과 다른 ‘무해한 웃음’이다. ‘유머’는 인간의 불완전성, 무지, 어리석음조차 따뜻하게 감싸 줄 수 있는 웃음이다.

그렇다면 타이요 만화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이런 유머를 배우게 되는 것인가.『철콘 근그리트』의 주인공 쿠로는 변해가는 다카라쵸를 지키기 위해 고분분투 하지만 이내 폭주하여 어둠에 빠진다. 그러나 다른 주인공 시로를 통해 유머를 배운다. 그리고 그 유머를 통해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더 이상 변화하는 다카라쵸를 자신들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쿠로와 시로는 변해버린 다카라쵸를 뒤로 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핑퐁』의 츠키모토 마코토는 세상에 대한 허무주의와 냉소로 인해 웃지 않는다. 그렇기에 천재적인 탁구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어렸을 때부터 히어로적인 존재로서 동경했던 또 다른 주인공 호시노 유타카가 다시 그의 히어로로 귀환하게 되고, 그가 동경했던 히어로와의 대결을 통해 진정으로 웃게 된다. 『철콘 근그리트』의 쿠로가 다카라쵸를 뒤로 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과 『핑퐁』의 츠키모토 마코토가 짓는 웃음의 의미는 ‘세상과의 화해’를 뜻한다.

『철콘 근그리트』와 『핑퐁』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타이요의 작품은 어딘가 세상과 동떨어져 보이는 주인공이 또 다른 주인공을 통해 유머를 깨우쳐서 세상과 화해하는 된다는 이야기 구조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 구조를 통해 그의 작품 속 주제의식을 독자들에게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GOGO 몬스터』이다. 세상과의 단절을 택하고 자폐의 어둠 속에 빠져 그것을 대변하는 ‘검은 문’을 열어 그곳으로 틀어박히려는 유키를 구해주는 것은 바로 마코토의 하모니카 소리다. 마코토는 유키에게 하모니카를 배웠고, 그 선율은 다시 유키를 구해준다. 이 장면은 마츠모토 타이요의 연출력이 극에 달하는데, 독자들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빨려들게 함과 동시에 작품의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전달한다.

세상은 ‘진지함’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늘 세상과 갈등하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때마다 이 세상과 화해해야 한다. 세상과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불완전성, 무지, 어리석음조차 따뜻하게 감싸 줄 수 있는 웃음, 즉 ‘유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타이요의 만화에서 어떤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가 가치있는 것은 이런 ‘유머’를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표작들을 포함해 타이요의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기회에 꼭 한번 마츠모토 타이요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을 접해보길 바란다.


권성주 만화연구소장


전경환 기자  32154039@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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