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신화’가 아니다
역사는 ‘신화’가 아니다
  • 구경남(교육대학원) 교수
  • 승인 2015.11.04 13:11
  • 호수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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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일본에서 교과서 국정제가 시행되었다. 천황(일왕)을 모독하는 내용을 통제하고 나아가 국민들로 하여금 대일본제국과 천황의 충성스러운 신민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일본이 ‘신의 나라’라고 역사교과서에서 가르쳤다. 박정희 정부도 1968년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하고 1974년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했다. ‘민족’과 ‘국가’를 최고 지상으로 삼고,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홍보하고, 정당화함으로써 국가라는 이름으로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하였다. 이는 각각의 정부가 공식적인 역사 내러티브를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국정제를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뿐인 역사는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 ‘신화’다. 


근래 한국의 뉴라이트 세력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 한국의 자본주의 발달을 선도했음을 공공연히 주장하면서 이러한 내용이 서술되지 않은 ‘한국사 교과서 공격’에 앞장서고 있다. 일제 시기 ‘쌀 수탈’을 경제 논리에 따른 ‘쌀 수출’이라고 하면서 당시 한반도 전체의 소득이 증가했다고 강변한다.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담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등장한 배경이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는 왜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할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 일본인의 회고록까지 싣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학교 현장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런데 설마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다른 한국사 교과서들이 모두 좌편향 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가 공인하는 역사가 필요하며,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려면 균형 잡힌 사실에 입각한 교과서로 배워야 한다고 국정제 교과서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대다수 한국인들의 역사인식과는 거리가 먼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담은 교과서가 국정으로 발행될 날이 멀지 않았다. 


2010년 정부는 세계 각국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과서 개발을 독려하고자 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방향이므로, 교과서 발행제도를 인정하는 정책을 도입한다고 하였다. 또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국정제가 위헌이라고 본 소수의견에 따르면 국정제가 “정부로 하여금 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독점적으로 교화하여 청소년을 편협하고 보수적으로 의식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어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선언한 헌법에 반하고 교육 자유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행정 예고 이후 역사(교육)학계와 시민사회, 학생을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거리 집회를 여는 등 반대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는 정권교체 때마다 역사해석과 역사교육이 정쟁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현재의 다원화된 한국 사회의 사회통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국정제가 아니라 다양한 역사적 관점이 반영될 수 있는 자유발행제를 도입할 때다. 역사의 복수성이 사실이 된 지금, ‘하나’의 역사만을 그것도 정부가 강요하는 역사는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 ‘신화’일 수밖에 없다.  

구경남(교육대학원) 교수
구경남(교육대학원)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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