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라는 책임의 무게
‘금수저’라는 책임의 무게
  • 승인 2015.11.10 17:10
  • 호수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金)수저

◇ 어릴 적 우리 집은 꽤나 부유한 편에 속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학비가 한 달에 50만원씩 들었던 사립학교를 다녔다. 당시 건설대기업에 재직하셨던 아버지는 딸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렇게 ‘좋은 부모’를 만난 덕에, 초등학생 주제에 교복까지 갖춰 입고 양질의 사교육을 받는 호화를 누릴 수 있었다.


워낙 옛날 일이라 기억이 대체로 어렴풋한데, 그 시절 머릿속을 지배하던 감정은 아직까지 연장선으로 남아있다. 좋은 환경이 마련됐음에도 항상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죄스러웠다. 아마 분수에 맞지 않은 행운이라는 걸 어린 나이에 짐작했던 것 같다. 하굣길이면 초등학생이 교복 입는 걸 아니꼬워하던 짓궂은 동네 오빠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부담감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초등학교 5학년 때 공립학교로 전학을 갔다. 지금에서야 ‘내가 주어진 복을 걷어찼었구나’ 하며 글감으로나마 그 시절을 회상하지만, 분명 저 기억은 들추기 싫은 트라우마다.
 

◇ 금(金)수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금수저란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좋아 아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풍족함을 즐길 수 있는 자녀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마디로 ‘부잣집 자녀들’을 지칭하는 이 단어는,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통용된 고유명사가 됐다. 급기야는 수저에 계급까지 달렸다. 금수저부터 시작해서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까지…. 더욱 면밀하게 나눠진 계급도는 마치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방불케 한다.
 

◇ 민주사회에선 모든 국민이 계급 없이 평등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선 재력이 곧 권력과 계급이 된다. 이 모순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금수저를 둘러싼 논쟁이 꼬리를 무나 보다.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은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 말라. 그가 사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고 당부했지만, 안타깝게도 있는 자의 충고는 대중에게 그리 와 닿지 않았다.
 

신이 제공한 타고난 환경적 조건은 비단 개인의 탓이 아니다. 노력만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단지 ‘환경’ 때문에 역으로 조롱받고 있는 부잣집 자녀들이 침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 어쩌면 부에 취해 남들의 평판은 신경 쓸 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 금수저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고 호위호식만 누리는 부잣집 자제들은 더더욱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가 제공하는 환경을 ‘수저’라는 계급으로 나눠 운명을 탓하는 현상 또한 바람직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거슬러 초등학교를 전학 갔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주어진 환경을 누려라”고 충고하고 싶다.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금수저 논란이 듣기 불편한 이유다.  
 <眉>

眉
다른기사 보기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