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리브로17. 가토 슈이치, 『양의 노래』
비바!리브로17. 가토 슈이치, 『양의 노래』
  • 단대신문
  • 승인 2015.11.10 17:13
  • 호수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시민으로, 현실에 발언하는 지성인의 삶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49년, 길을 걸어 통학하던 중학생은 길에서 책 한권을 줍는다. 그 책은 ‘문둥이 시인’으로 알려진 한하운의 시집이었다. 이 시집을 밤새워 통독한 소년은 결심한다. “나도 나병에 걸리리라. 그리고 시를 쓰리라” 시인 고은(高銀)은 이렇게 탄생했다.


인간에게는 전환점이 있다. 그 전환점은 정신의 내밀한 상처나 폭발일 수도, 팽창하는 육체의 쾌락 혹은 절망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범인(凡人)은 자신의 삶에서 만난 전환 시점을 자각하기 힘들다. 놓친 열차의 뒷모습을 보면서 시간의 아름다움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 까닭이다. 만약 ‘놓친 열차의 뒷모습’을 알아보고 싶다면 어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치열한 삶을 살아온 선인들의 회고록을 읽는 것이다. 위대한 인간의 성공비결을 알려는 것이 아니다. 삶의 위대함을, 내 삶의 가치를 자각하는데 ‘회고록 읽기’만한 방법이 없다.


“그때까지의 영웅은 일개 평범한 인간으로 바뀌고 애국심은 이기주의로, 절대복종은 무책임으로, 미덕은 두려움이나 무지로 면했다.(중략) 드디어 시부야의 헌책방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 열 권을 사다가 지칠 줄 모르고 탐독해 그 책에 인용된 무수한 문예가의 이름까지 죄다 외워버렸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지성을 상징하는 가토 슈이치(加藤周一, 1919~2008)는 자신의 자서전 『양의 노래』를 통해 사춘기 소년의 지적 성장을 이렇게 돌아봤다. 이 책에는 일본의 상류층 가족에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던 소년이 자유주의자이자 세계시민으로, 인류의 양심을 움직이는 지성으로 성장하는데 어떤 일을 보고, 느끼며 살았는지가 담담한 목소리로 진술되고 있다.


동경제대 의과대를 나와 의사이자 뇌 과학자였던 가토는 1958년부터 아예 문학평론가로 나선다. 공저를 빼고도 55권의 저서를 남긴 그는 죽기 전까지 일본 평화헌법을 지키는 실천가이자 세계시민으로 존재하려 노력했다. 이런 유형의 거장이 쓰는 자서전은 흔히 자신의 공과(功過)와 그 원인, 과정을 알리는 데 주력하기 마련이지만 가토는 그렇지 않다. 독서, 여행, 사랑, 토론 등을 통해 동시대의 이슈들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이룬 자신의 고민과 성장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더해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한 능력은 미국, 프랑스, 독일 등 국경을 넘는 우정과 교유를 가능케 했고 의학, 문학, 철학 다양한 지식과 결합해 풍성한 지적 탐색을 돕고 있다. 코스모폴리탄, 르네상스, 그리고 휴머니즘이 아마도 가토의 삶을 규정하는 개념어가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양의 노래』를 평범한 회고록과 구분 짓는 가치이고,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근대화를 통해 달성한 지식과 교양의 밀도를 이 책을 통해 간접 체험하며 새삼 부러웠다. 동시에 패전 직후 일본이 평화헌법을 지킬 수 있었던 데는 행동하는 일본 집단지성이 큰 힘이 되었음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현실과 손잡은 교양, 국가에 파묻히지 않는 인류애, 행동하는 지성의 궤적을 반추하는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을 한국어로 음미하게 해준 번역자 이목에게도 고마움을 보내고 싶다.

▲ 저 자 가토 슈이치출판사 글항아리출판일 2015년 9월페이지 552쪽

김남필 홍보팀장

단대신문
단대신문 다른기사 보기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