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짝에 갇힌 학생이여, 민주주의의 권리를 누려라
궤짝에 갇힌 학생이여, 민주주의의 권리를 누려라
  • 이용호 기자
  • 승인 2015.11.24 13:17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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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탄 니묄러 목사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의 몇 구절이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부르짖었던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무색하게 현대의 민주주의는 국민의 무관심으로 빛을 잃어가고 있다. 제2의 나치가 덮쳐도 침묵을 지킬 것만 같은 정치적 무관심이 우리 사회에 공공연히 퍼지게 된 것이다.

우리 대학의 학생자치활동 또한 다르지 않다. 지난 17일 죽전캠퍼스 혜당관 앞에서 열린 동아리연합회 차기 후보들의 토론회에는 총 5명의 학생 청중뿐이었다. 동아리를 이끌 수장 후보의 차기 운영 계획을 듣기 위한 토론 자리에 참석한 유권자 5명. 학생들의 주인의식 부족이 드러난 차마 웃지 못 할 광경이었다.

앞서 죽전캠퍼스의 ‘9·15 학생총회’가 정족수 부족으로 성사되지 못했고, 천안캠퍼스의 차기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은 20%대를 기록했다. ‘참여하지 않는 학생’ 문제는 이제 어느 한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지난 호 보도에서는 학과 행사에 불참하는 현상을 주제로 단과대 학생회를 취재했다.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내민 학과행사 불참현상의 원인은 두 가지였다. 첫째, 취업난이 심화되며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만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 둘째, 학생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학과 행사를 관례처럼 진행하고 있는 학생회. 학생이나 학생회나 구전문사(求田問舍)에 빠져 ‘우리 대학’에 대한 공동체 의식은 제쳐놓은 채 목전의 이익만 노리고 있는 것이다.

권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닌 누리는 것이 돼버린 지금, 대다수의 학생이 자신이 가진 참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안일하다. 자신의 권리를 취업이라는 궤짝에 구겨 넣으며 목이 빠져라 스펙만 바라보는 학생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주저한다.

그나마 온라인에선 궤짝에 갇힌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스크린 뒤에 가려진 그들의 손은 타자기 위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취업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연민, 낭만이 사라진 대학에 대한 불만. 그 사이에서 우리는 그저 남 탓하기 바쁘다.

학생총회 정족수 부족과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 저하에 누구의 탓을 하겠는가. 참여하지 않는 학생의 탓이다. 취업도 학점 때문도 아닌 ‘나 말고는 관심 없는’ 우리 모두의 탓이다. 정치적 무관심 현상이 부끄럽지 않게 된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명언이 무색하다.

침묵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궤짝에서 벗어나 진정한 권리를 누릴 때이다.

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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