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 - 엄마의 사랑으로 연말을 꽃 피우다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 - 엄마의 사랑으로 연말을 꽃 피우다
  • 박다희 기자
  • 승인 2015.12.01 16:50
  • 호수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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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문화in 119

참으로 꽃이다. 푸른 들판의 가녀린 들꽃 같은 이 여자에게 꽃말이 있다면 ‘행복’일까. 축구밖에 할 줄 몰랐으나, 부상으로 더는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시골 청년을 꽃 전문 사진가로 다시 일으켰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청년과의 결혼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딸을 홀로 응원하고 믿어줬다. 집 앞에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에도 사랑을 주는 이 여자. 바로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의 주연, ‘소정’이다.

연극은 소정이 떠난 지 1년이 되는 기일에서 시작된다. 극 중에 등장하는 소정은 모두 환영이다. 세상을 떠난 그녀는 남편 ‘서진’과 딸 ‘고은’의 추억 속에 산다. 서진은 카메라를 만지며 먼저 떠난 소정을 그리워한다. “남들이 모르는 걸 안다는 건 아주 소중한 거예요. 서진 씨 가슴에 있는 남다른 것, 그걸 찍어 봐요” 카메라는 축구를 잃고 절망에 가득 찼던 그에게 소정이 선물해 준 행복이다.

딸 고은에게도 소정은 든든한 버팀목이다. “아주 잘생겼다우, 피부가 좀 검긴 하지만” 모두가 외면한 고은의 남편을 보고 소정이 건넨 말이다. 많은 이들의 비난으로 지친 고은에게 “길을 알고 결혼하는 이는 없다”고 말하는 소정. 이후 자주 ‘나 서방’을 찾으며 살뜰하게 이들을 챙긴다.

소정과 서진이 ‘천사들도 발끝으로 걸어야 할 것 같은’ 아름다운 시골에 내려와 함께한지 어언 삼십 년. 소정에게 불치병이 찾아오고, 가냘픈 그녀의 몸에 죽음의 냄새가 덮친다.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했던가. 제목에서 은연하게 드러나듯이 길 떠나기 좋은 언덕 아래 햇볕 따뜻한 날, 소정은 서진의 붙잡는 손을 뒤로하고 수녀와 함께 호스피스로 떠난다.

마당의 흔들 그네에 앉은 소정이 서진에게 말한다. “우리… 참 잘 살았지요?” 머리 위로는 돌배나무 꽃잎이 흐드러진다. 삶을 정리하기에 더없이 담백한 말이다. 이 말이 관객들에게도 와 닿았는지, 막이 내려진 후 객석을 나서는 이들의 눈시울이 붉다.

감히 말하자면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은 행복한 극이다. 비록 소정이 떠나 남은 이들은 그리움에 잠기고, 관객은 몇 번이나 울컥 눈물을 삼키지만 가족을, 특히 우리네 엄마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머리에 꽃가지를 꼽지 않아도 손에 꽃다발을 쥐지 않아도 꽃같이 예쁜 엄마가 생각난다.

이 연극에서 주목할 점은 소정 역을 배우 김혜자 씨가 연기했다는 것이다. 소정의 투명한 소녀다움, 병마의 고통을 참아내는 강인함, 관객마저도 웃게 하는 행복감. 모든 장면에서 배우 김혜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낸다. 특히 시적인 대사들을 마치 일상 언어처럼 들리게끔 하는 그녀의 부드러움이 극의 맛을 더욱 살린다.

가족에게 아내란,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바라보기만 해도 애틋하지는 않은가. 코끝이 시리게 부쩍 추워진 초겨울, 다가올 연말을 맞이해 엄마와 손을 맞잡고 따뜻한 연극 한 편 관람하는 것은 어떨까. 오는 20일까지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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