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분향소

‘민주화 주역’의 서거와 이 땅에 남겨진 우리의 과제 임수현 기자l승인2015.12.01l140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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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김영삼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1993~1998)이 향년 88세로 서거했다. 정부는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첫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행정자치부는 5일 동안의 국가장 기간에 국회에 마련된 정부 대표 분향소 및 자치단체가 마련한 전국 221곳 분향소에 총 23만8천여명이 조문을 한 것으로 집계했다. 국민들에게 그는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지난달 25일, 서울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직접 찾아가봤다.   <필자 주>

(1) 분향소에 도착하다
비도, 눈도 아닌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주로 일반인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긴 행렬의 추모객들은 추워지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화꽃을 손에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광장 분향소에 도착하니 독재 정권 시절 김 전 대통령이 이끌며 민주화 투쟁을 벌였던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 회원, 박진 전 국회의원과 새누리당 이종혁 의원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서울광장 분향소 한켠에 마련된 민추협 천막 사무실에서는 나이 지긋한 회원들이 난로가에 앉아 김 전 대통령이 벌여왔던 민주화 투쟁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민추협 회원들은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문민시대를 여신 분”이라고 이야기를 전한다.

(2)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다
아침 출근시간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이 조문을 하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다. 차례를 기다리며 지루해지려 할 때 쯤, 백발에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젊은 사람이 추운데 아침부터 대단하네. 대통령을 잘 알긴 알우?”라며 말을 건다. 그에게 자세히 알려달라며 되물어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양김시대’를 이끌며 대한민국 민주화의 획을 그은 김영삼 전 대통령. 그의 좌우명은 ‘대도무문(大道無門)’으로 ‘정도를 걷는다면(모든 일에 정당하다면), 거리낄 게 없다’는 뜻이다.


“맨 처음 정치에 입문한건 1954년 자유당 후보로 27살에 국회의원이 되면서 부턴데, 그 당시엔 27살이 국회의원도 됐었지. 그 후로 1992년까지 38년간 의정 활동을 하며 최고로 많은 9선 의원을 지냈어”라고 말한다.


이어 1993년 대통령이 된 후, 군부통치를 끝내고 군인이 아닌 보통사람, 즉 일반인 출신의 대통령이 통치하는 ‘문민정부’를 세운다. 그리곤 “정치자금은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며 자신의 재산 공개를 시작으로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를 도입한다. 당시 재산은 17억 7천822만 6천70원.


이야기를 듣다 보니 차례가 돼 가슴에 근조 리본을 붙이고 국화를 받아 대기한다. 진행을 도와주는 관리자가 “순서가 되면 일렬로 서서 방송에 나오는 지시에 맞춰 조문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커다란 김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 앞에 서서 묵념을 하고 국화를 놓는다.


함께 조문을 했던 최창석(56) 씨는 “고인은 젊을 때 민주화 투사였다. 민주화를 위해 두 김 씨(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만큼 싸운 분들이 없다”고 강조한다.


분향소를 나와 걷다보니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김민석(55) 씨는 “‘공(功)’ 만큼이나 ‘과(過)’가 많은 대통령으로,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 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3당 합당에 동참했다”며 “자신의 투쟁 대상이던 독재세력과 손잡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호남을 고립시키는 한국 정치의 퇴행을 주도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어 박민우(39) 씨는 대통령 재임 후반부의 차남 김현철 씨의 국정 개입과 한보 비리 연루, 경제정책 중에서는 1997년 IMF구제금융 사태를 설명한다.
그는 “정권 초기에는 실명제로 투명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국민적 지지를 얻었지만, 관행으로 굳어져 있던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 경영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3) 집으로 돌아가며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고인의 빛나는 ‘민주주의’ 유산은 우리 시대에 더욱 계승해 빛을 더하게 하고, 어두운 유산은 올바르게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집에 가는 길, 분향소 안과 밖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곱씹어본다. 진눈깨비가 함박눈이 되는 그 날을 기다려본다.


임수현 기자  32120254@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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