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촬영현장 속 보조출연 아르바이트 체험 (上) - 인기 알바, 그 이면의 명과 암
방송촬영현장 속 보조출연 아르바이트 체험 (上) - 인기 알바, 그 이면의 명과 암
  • 전경환·이시은 기자
  • 승인 2016.03.08 20:05
  • 호수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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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을 준비중인 스태프들

2016학년도 1학기에 8차례 연재되는 르포 ‘현장 Zoom in’에선, 학생 기자들이 평소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부조리한 현장을 직접 찾아 취재한다. 생생한 체험후기를 지면으로 접한 독자 또한 사회문제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한 번쯤 해 보고 싶은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물으면 방송국 알바가 항상 빠지지 않는다. 분야는 보조 출연, 스텝 보조, 방청객 등으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알바는 바로 ‘보조출연 알바’로, 이 알바의 채용공고만 올라오는 사이트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요즘 많은 청년이 보조출연 알바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지난달 22일, ‘하늘기획’ 면접을 거쳐 방송촬영현장에 두 기자가 직접 보조출연자로 뛰어들어 봤다.             <필자 주>

 

"노동권 사각지대 ‘을’이 된 보조출연 알바생"

  # 알바야, 모델이야?
‘지.원.자.격.’ 결연했던 의지를 사그라지게 한 네 글자.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는 알바임에도 웬만한 기업 입사만큼이나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붙는다. 남성기준 키 175cm, 여성기준 키 163cm. 대한민국 평균 신장(2015년 기준 남성 170.5cm, 여성 156.9cm)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기준에 미치지 못한 기자를 포함, 보조출연 알바를 희망하던 많은 지원자를 울렸을 것으로 보인다.
왠지 서글퍼지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조건을 살펴본다. 키, 몸무게, 나이, 거주지 등의 개인정보는 물론 증명사진과 업체 측에서 지정한 은행의 통장이 필요하다. 게다가 의상은 모두 개인 지참이다. 특히 정장 같은 경우 세미, 캐주얼, 기본 정장이 색상별로 한 벌씩 구비돼 있어야 한다. 지원 자격만 보면 보조출연 알바를 뽑는 건지, 슈퍼모델을 뽑는 건지 혼란스럽다.

 

▲ 기획사 외벽에 붙은 각종 드라마 포스터

# 첫 면접, 의문의 계약서
“죄송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미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랭한 목소리.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쉬운 알바라고 누가 말했는가. 각종 제약의 벽을 두고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무려 여덟 곳의 엔터테인먼트에 면접을 의뢰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걸었던 마지막 전화, “한번 와 보세요”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희망이 보인다. 면접은 평일 오후 2시와 4시 중 편한 시간을 선택하면 됐다. 오후 4시, 간신히 얻은 기회를 놓칠세라 부리나케 달려간 면접장에선 정장을 차려입은 사무원들이 눈에 띈다. 한 사무원이 두 기자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섯 명의 청년, 두 명의 장년을 한 자리에 모아 안내를 시작한다.
쪼아대는 듯 따가운 목소리로 급여 정보, 준비해야 할 것, 주의사항 등을 쏟아내더니, 이내 의문의 계약서를 내민다. 열 번의 촬영을 마치면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내용의 계약서다. 2만원의 보증금, 왠지 꺼림칙함을 감출 수 없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알바에 역으로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 의아했지만, 이제 정식으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뜬다. 그렇게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다.

  # 우여곡절의 끝은 우여곡절
간절한 마음으로 잡았던 동아줄이 실은 썩은 동아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에서 소개해준 기획사에 방문했다. 끊임없는 전화벨 소리와 사무원들의 바쁜 발놀림이 혼을 쏙 빼놓는다. 조심스럽게 소개받은 지부장님을 찾았다. 어떻게 왔냐는 질문에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돌아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 “거긴 우리 기획사랑 전혀 상관없는 곳이에요” 지부장님의 충격적인 한마디는 두 기자를 얼어붙게 하기 충분했다. 처음부터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는 상황, 보증금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위안 삼아 계약하고자 했다. 계약서를 쓰며 질문을 던졌다. “언제쯤 일거리를 받을 수 있나요?” 지부장은 두 기자를 쓱 훑더니 키가 작거나 정장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일을 받기 힘들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먹먹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결국 계약을 포기한채 기획사를 나선다.

  # 한 올의 지푸라기
“안 될 놈은 역시 안 되나봐” 자조적인 혼잣말이 터져 나온다. 2만원의 보증금, 발품 팔며 돌아다닌 시간이 한순간에 증발했지만 결국 다시 원점이다. 오후 4시,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됐다. 포기하려던 찰나 지인의 추천으로 한 기획사와 면접 약속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한 올의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 발걸음을 뗐다. 기획사를 수차례 방문했기에 계약서의 기본 내용쯤은 눈 감고도 욀 수 있었다. 속전속결로 계약이 성사됐다. 계약서를 넘겨줌과 동시에 지부장님이 말했다. “조금 이따 저녁 촬영 일정이 있는데, 해볼래요?”

  # 숨통 틔는 제안, 숨 막히는 결정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누빈 하이에나처럼 온종일 일거리를 좇아 여의도 일대를 누빈 두 기자에겐 너무도 달콤한 제안이다. 오후 5시를 기점으로 6시까지는 답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획사를 나섰다. 준비물은 평상복 두벌과 운동화, 그리고 모자로 비교적 간단했다. 보통 일거리가 주어지기까지 평균 일주일 이상 걸린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결정의 시간까지 앞으로 10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동안 애타게 찾아왔던 일거리임이 틀림없지만, 저녁 8시 30분에 시작되는 촬영의 끝은 알 수 없다. 촬영과 동시에 귀가는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찾아온 선택의 시간, 두 기자는 귀가를 반납했다.

  # 남의 집 귀한 자식이에요
어둠이 내려앉은 역삼역 1번 출구에 여섯 명의 보조출연자가 모였다. 두꺼운 옷을 가득 껴입은 김지유(24) 씨에게 옷차림에 관해 물었다. “실외촬영일 경우 매우 추워서 옷을 두껍게 많이 입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김 씨는 이어 보조출연알바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일정 조정이 자유로워 학업과 병행할 수 있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6회째 촬영에 임하고 있다”고 답한다. 한편 거센 바람에도 부동 없는 자세로 서 있는 이우정(23) 씨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여행을 가기 위해 경비를 모으고 있다. 단기간에 고소득을 벌 수 있는 알바를 찾다가 접하게 됐다”고 말한다. 최저임금인데 고소득 알바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는 반문에 “최저임금이지만 연장 추가시급과 야간시급, 지역지원비가 철저하고 일찍 일정을 잡으면 하루에 두 차례의 촬영도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오후 8시 40분경, 촬영팀으로부터 늦깎이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좀 늦으니까 모여서 기다리고 있으란 말만을 전하고 끊는다. 오후 9시, 예정 촬영 시작시각에서 40분이 지나서야 드디어 촬영팀의 모습이 보인다. 별도의 확인절차 없이 보조출연자들을 둘러보더니 차에 타라는 손짓을 한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라는 말은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그래도 좀 너무하다 싶다. 이어서 손바닥을 까딱거리는 관계자의 몸짓에 보조출연자들이 너도나도 활동일지를 내민다. 활동일지가 없으면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하니 꼭 챙겨둬야 한다. 미처  작성하지 못했던 두 기자는 관계자의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높아지는 언성이 듣는 사람의 기분을 언짢게 한다. 왠지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 얼굴이 두둥실 떠오른다.

  # 촬영 전, 되짚어보기

주마등처럼 스치는 오늘 일과를 바탕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 불황 속에 청년들은 점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 보조출연 알바는 바쁜 생활 속에서 일정을 조정하며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청년들의 간절함을 이용해 근로계약 관계에서 위약금 목적의 보조금은 엄연한 불법임에도 보증금을 착취하는 악덕 업체들, 최저임금을 쥐여 주며 반말과 폭언으로 하대하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방송촬영현장 속 보조출연 아르바이트 체험 (下)’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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