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옷장' 한만일 대표 : 공유경제로 가치 있는 사회를 디자인하다
'열린옷장' 한만일 대표 : 공유경제로 가치 있는 사회를 디자인하다
  • 설태인 기자
  • 승인 2016.03.08 20:24
  • 호수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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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옷장 대표 한만일(경제·08졸) 동문

구국·자주·자립은 우리 대학 설립자인 범정 장형 선생과 혜당 조희재 여사가 겪었던 삶에서 비롯된 우리 대학 창학 이념이다. 2016년을 맞이해 ‘화요일에 만나요’에서는 이러한 창학 이념을 실천하고 있는 현대인들을 만나보고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도록 개편했다. 다양한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 대학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실천을 다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필자 주>

"의도하지 않더라도 좋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이 공유의 힘"

 

Prologue.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에서 고한다. 소비자의 의식은 소유가 아닌 접속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지금까지의 삶이 물건을 사용하기 위해 소유해야만 했다면, 앞으로는 그것을 가진 사람의 정보에 접속해 공유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접속의 시대는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택시와 운송기사를 보유하지 않은 택시회사 ‘우버’나 사용하지 않는 방을 공유하는 ‘에어비앤비’는 물건을 소유한 사람과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는 공유경제 기업이다.
 

한국에도 공유경제의 바람이 불고 있다. 청년구직자들에게 면접용 정장을 빌려주는 비영리단체 ‘열린옷장’ 대표 한만일(경제·08졸) 씨도 공유경제의 가치를 믿는다. 한 씨는 희망제작소의 ‘소셜디자이너스쿨(SDS)’에서 만난 팀원들과 취업난을 겪는 구직자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정장대여를 떠올렸다. 그렇게 시작한 열린옷장은 입지 않는 정장을 기증받고, 기증자의 따뜻한 응원을 담아 저렴한 가격에 대여하는 착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에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한 씨를 만나 공유하는 삶과 그것이 가진 힘에 관해 이야기 나눠봤다.

 

▶ 구직자들을 돕기 위해 정장대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직장인이라면 옷장에 잠들어있는 양복 한 벌쯤은 있다. 잦은 야근과 회식 때문에 체중이 늘었거나, 캐주얼한 복장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은 양복을 거의 입지 않는다. 한쪽에선 옷이 남고, 다른 쪽에서는 비용이 부담되지만 어쩔 수 없이 옷을 구매해야 한다. 이 둘을 연결해주면 좋겠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했다. 거기에 기증자의 사연을 공유해 선배가 후배를 응원하는 따뜻한 마음을 담아냈다.

▶ 사무직원으로서 ‘소셜디자이너스쿨’에 참여했는데 ‘열린옷장’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같은 팀이었던 두 사람과 일단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열린옷장을 시작했고, 고맙게도 많은 사람이 공감해줬다. 원래 다니던 직장을 1년 정도 휴직하면서 운영했다. 휴직 기간이 끝나고 보니 기증도 적게나마 들어오고, 옷을 빌리려는 분들도 늘어나 무책임하게 그만둘 수 없었다. 옷을 빌려 가서 합격했다거나 감사하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책임감이 더욱 커졌다. 열린옷장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사업에 전념하게 됐다.

▶ 초기에는 기증자가 없어 직접 양복을 기증했다고 들었다. 그 옷에는 어떤 사연이 있나.
기증한 양복이 남색이라 딱딱한 인상이 아니었는지, 입사 토론에서 사회를 맡게 됐다. 토론을 무사히 이끌고, 개인면접에서도 기운이 이어져 기분 좋은 합격을 안겨준 양복이다. 맞춤 양복이었지만 초기엔 워낙 기증자가 없었고, 살이 좀 쪘을 때라 미련 없이 기증했다. 나중에 이 양복을 빌려간 사람이 구직면접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굉장히 뿌듯했다.

▶ 열린옷장이 자립하기 위해선 기증이 절실했을 것 같다.
초반에는 빌리는 사람의 키와 몸무게를 물어보고, 맞는 옷이 없어 “앞으로 더 많이 기증받겠다”는 말과 함께 돌려보낸 적이 많았다. 옷을 싸게 빌릴 수 있어 연락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막상 기증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회사들을 찾아가서 발표하고 기증을 받거나, 등에 열린옷장 홍보물을 붙이고 마라톤을 완주한 적도 있다. 열린옷장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 명이라도 마음이 움직인다면 옷을 기증해줄 것이라 믿으며, 무모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 열린옷장의 성장과 더불어, 다양한 공유경제 단체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은 공유경제가 발전하기에 적합한 나라다. 인구밀도가 낮은 곳에선 서로 간의 거리가 멀어 무언가를 공유하기 어렵다. 서울에는 한 공간 안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고, 그만큼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 단지 다른 사람이 그걸 가지고 있다는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을 뿐이다. 공유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이 정보를 오픈해야 하는데,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빠른 공유를 도와줄 택배서비스까지 완벽하니, 한국에 공유경제 단체가 늘어나는 현상은 당연하다.

▶ 그럼에도 아직 한국 사회에선 소유의 개념이 더 익숙한데, 공유경제가 가진 장점을 묻고 싶다.
‘소유하지 않고 사용하기’가 공유경제의 캐치프레이즈다. 공유의 개념이 퍼지면 물건을 생산하지 않고 기존 제품을 활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만약 여행할 때 호텔이 아니라 숙박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를 이용한다면, 집을 공유해준 사람을 생각해서 수건이나 물을 아껴 써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환경을 보호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 옷, 집, 자동차까지…,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공유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산대의 한 교수님이 전공서적 구매가 부담스러운 학생들을 위해 본인 책을 파일로 공유했다. 정부가 해결하는 영역 밖이거나 시장에서 무관심한 것을 공유경제 아이템으로 활용한다면 사회의 숨통이 트이고, 구멍이 메워진다. 학생들도 일상 속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들을 개선하는 법을 고민해보길 바란다.

▶ 대학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실제로 그런 고민을 했는지.
엄청난 고민을 하거나 멋있는 생각을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여러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다양한 시각을 가지려 노력했고, 학점을 중요시하지 않아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다. 학과 생활보단 천문학동아리 ‘별사랑’ 활동을 했는데, 종종 학생회관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며 놀았다.

▶ ‘희망제작소’의 문을 연 박원순 시장과 대학 시절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고 들었다.
박원순 시장이 동문으로서 우리 대학에 강연하러 온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분이라 강연이 끝난 뒤 CD와 편지를 전달했는데, 일주일 뒤 잠깐 만나자며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좋게 보였는지, 박 시장이 희망제작소 직원들 앞에서 “여기 단국대 경제학과 4학년인데 오늘부터 인턴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인턴 경험은 큰 자산이 됐고, 인연이 이어져 소셜디자이너스쿨에도 참여했다. 박 시장은 또, 열린옷장이 좋은 아이디어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앞으로 열린옷장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나.
비영리단체지만 수익이 조금씩 발생하고 있어 이 수익을 의미 있게 쓰려고 한다. 이번 달부터는 ‘십시일밥’ 프로젝트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근거지인 건국대와 한양대부터 월 100만원 정도 씩을 기부해 많은 학생이 식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옷을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 재학생과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린옷장도 트위터와 다음 카페 하나로 시작했다. 무언가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많이 알면 두려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앞으로 발생할 부분이지, 지금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작더라도 직접 시작하고 경험하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과는 천지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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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nos3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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