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널
기억해, 널
  • 한소희(신소재공·4)
  • 승인 2016.03.08 20:25
  • 호수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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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첫사랑의 아련함을 들춰내는 연금술이 담긴 풋풋하게 어린 감정들을 어루만지는 노래를 들어본다. 달큰하게 부드러운 바람이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흘러들어와 머릿결을 흩뿌리고 얼굴을 매만질 때, 기분 좋은 바람결과 마주하는 순간 고운 얼굴을 바람결에 내맡기려는 듯. 건조하고 따사로운 햇볕 냄새와 밝은 살구색 운동장의 모래도 가만히 멈추어있다. 올려다본 하늘은 얇은 구름 커튼과 연파랑 빛. 소란스럽지도 적막하지도 않은 교실 안 까만 의자 끌린 자국이 가득한 초록 바닥과 나무 책상, 그리고 그 위에 팔꿈치를 괴고 앉아있는 나. 딱 여름의 초입쯤이었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던 그 날들 속에서, 키다리 책상에 엎드려 복도 너머로 마주한 초록의 나무는 흔들리는 바람결에 인사를 건넨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 따라 걸린 시선의 끝에는 미래에 대한 회상이 가득하다. 앞날을 되돌아보는 격. 가만히 나뭇잎과 마주하다 간질이는 바람에 눈을 살포시 감아보면 얼굴에 맞닿는 솜털 같은 행복함. 청소시간의 소음이 백색 소음이 되어 나를 감싸 안아준다. 태양을 가득 머금은 황금빛 구름과 오묘한 빛깔로 물드는 높은 하늘. 땅거미가 내려앉을 채비를 한다. 저녁의 문턱에서 느끼는 알알한 해방감을 만끽할 때 즈음 네가 다가온다.
 

바다 빛을 닮은 널 기억해. 하고 싶었던 그 말 못하고 너의 반 문 앞에서 얼쩡거리던 내 두 발. 괜히 하릴없이 복도를 서성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마주치면 막상 피할 거면서. 이동 수업 시간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친구들 틈에 높은 유리창 사이로 저 안에 네가 있을까 흘끔거리다가 눈이 맞았던 날도 있었다. 조회 시간 신나게 문자를 주고받다가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깜짝 놀라 슬며시 고개를 들 때면, 무서운 얼굴로 나를 내려보던 선생님. 핸드폰을 빼앗기면서도 그 불편함 속에서 싹 텄던 미묘한 감정이 자리했다. 다시 돌려받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날들, 부푼 가슴에 잠 못 이루던 그 날들 후에 핸드폰을 켜자마자 울리는 진동에 사소하게 행복할 수 있었던 지난날의 우리였다. 답장을 기다리던 순수함도, 눈에 아른거리는 마지막 캠프파이어의 불빛도. 함께여서 소중했던 마음속에 늦어가는 밤하늘처럼 덧없이 흘러가 작별해버렸다.
 

복도에서 떠들다 같이 혼나던 우리 둘, 벌서면서도 왜 그리도 즐거웠는지. 애써 외면하든 감추든 감정은 지금도 아픈 비밀의 기억일 뿐, 시작하지도 않고 끝나 버린 이야기. 숨기고 있던 오랜 비밀들을 차라리 들켰더라면.
 

낡은 기억 속 헤지고 바랬어도 소중한 것, 오롯이 너를 좋아했던 투명한 마음. 지금은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폴더 폰. 그리고 그 속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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