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진심을 울린 말 한마디
필리버스터. 진심을 울린 말 한마디
  • 승인 2016.03.10 17:58
  • 호수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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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그 본질이 통했던 것일까. 얼마 전 테러방지법의 통과 저지를 위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달 23일 오후 7시 7분에서 이달 2일 오후 7시 32분까지, 약 192시간 동안 무제한 릴레이 토론이 진행된 것이다. 절박함에 단상 위로 올라갔을 의원들은 놀랄 만큼 침착하고 논리정연하게 토론을 이끌었다.


이는 시종일관 정치에 심드렁했던 청년층을 움직였다. 토론 영상이 SNS 상에서 실시간으로 오르내려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를 장악했고, 급기야 국회의사당을 찾아가 방청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논란 또한 거세졌다. ‘말’의 위력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느껴진 순간이었다.
 

◈ 그 모습에서 불현듯 영화 <올드보이>가 떠올랐다. 이유도 모른 채 15년 동안 방 안에 갇혀 군만두만을 꾸역꾸역 삼켰던 주인공 ‘오대수’. 자신을 감금한 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똘똘 뭉쳤던 그는, 방에서 풀려남과 동시에 도리어 더욱 치밀하고 처절한 복수극에 휘말리게 된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내몰아버린 사건의 원흉은 바로 ‘입단속’이었다.
 

과거 친구 우진과 그 누나의 근친연애를 목격한 후 학교에 소문을 냈던 대수. 이 사건으로 우진의 누나는 자살했고, 홀로 남은 우진이 살벌한 복수극을 기획한 것이다. 말 한 마디가 일으킨 파장은 너무나도 처참했다.
 

◈ 평소 말주변도 없지만 말을 신중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올드보이> 주인공들을 모두 비극으로 내몰아버린, 무심코 내뱉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웬만해선 침묵을 지키는 것이 타인을 위한 배려라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위 사태를 지켜보며 말에 대한 개인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보단 말로써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필리버스터가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까닭은, 정치인들의 진심과 절박함이 담긴 열띤 토론이 청객에게 감동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단상 위에 올라간 그들을 자꾸만 응원하는 것도 감동의 물결에 합류하기 위함일 것이다.
 

◈ 당신은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혹은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 위해 세상 앞에서 홀로 설 수 있는가?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입’만을 가진 채 말이다. 언변이 화려하지 않아도 절박함과 진심이 담긴 말 한 마디는 강력한 감동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한편 <올드보이>의 대수는 극의 마지막에서 혀를 잘랐고, 테러방지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대수와 국회의원들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바로 ‘때는 흘러 없어지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영구히 남는다’는 톨스토이의 격언이다.    <眉>

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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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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