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9회 대학문화상 시 부문 당선작(종합)
■ 제39회 대학문화상 시 부문 당선작(종합)
  • 단대신문
  • 승인 2016.03.10 18:10
  • 호수 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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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의 낙서가 빛나는 밤'

 

골목은 작년보다 길어진 가로수를 품고 산다
그 가로수 그림자에서 풍 걸린 남자가 걸음마를 연습했다
그 모습이 날개를 펴고 날아갈 기세같이 아름답다

골목을 쓸고 있는 빗자루가 조용히 빛날 때
골목은 쌓이고 쌓인 발자국의 바깥을 조용히 걸어본다
오늘도 골목에선 유령의 가면을 쓴 바람만이 출몰했다
더러는 부패된 우유를 마신 도둑고양이가 주인이 되기도 했다

산꼭대기에 있는 언덕 위의 붉은 집으로 가기 위해선
이 골목길을 지나가야 했다
창문 깨고 투신 하는 달빛을 뒤집어 써야만 했다
무섭도록 고요한 어둠이 그림자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골목의 담벼락에 핀 꽃들은 넝쿨장미
장미는 붉은 주먹을 쥐고 어둠을 둘렀다
야행성의 날 것들이 천천히 날개를 접었다 피는
골목길엔 가로등이 없다 대신
담벼락의 낙서가 하얗게 빛났는데 그것을 보고
밤은 발자국을 하나, 둘씩 집으로 귀가를 시켰다

 


■ 심사평
심사위원 : 오민석(시인, 영어영문학과 교수), 임수경(시인, 교양교육대학 교수)
올해 대학문화상 운문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184편(응모자 45명)이었다. 투고숫자로만 보면 예년과 비슷한 추이겠지만, 응모자들이 예술계열 뿐만 아니라 자연계열, 상경계열, 사회계열 등 여러 학과에서 골고루 투고했다는 것이 예년과 다른 점이었다.
우선 각자의 위치에서 개성 있고 수준 높은 작품을 제출해 준 모든 응모자들에게 감탄과 고마움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개별적으로 예심을 거친 후 선별된 작품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등 어느 때보다 신중과 공정을 기했다. 몇 차례 토론을 통해 올해 대학문화상 운문부문 수상작으로, 대상은 문병철(경영학과)의 <담벼락의 낙서가 빛나는 밤>을, 가작은 유가희(공연영화학부)의 <금정 이발소>를 결정했다. 각각의 작품은 시의 분위기와 시적 세계가 독특하면서도 시상(詩想)에 대한 응집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우선 대상 수상자인 문병철의 작품 세 편 모두가 수작(秀作)으로 뽑을 수 있을 정도로 수준편차가 적고,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냈다. 또한 무리한 시적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전달력이 강한 문체를 구사하면서 감성의 전달 및 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대상작인 <담벼락의 낙서가 빛나는 밤>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시간을 초월한 독창적인 공간구축력’이 뛰어났다.
가작 수상자인 유가희의 작품 여섯 편 역시 ‘각각 시어의 발랄한(!) 감각에도 불구하고 작위적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완성도’가 돋보였다.


■ 당선소감
문병철(경영학과)

“감사합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이였습니다. 제 시가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 상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기쁨보단 ‘내가 정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왜냐면 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모한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경영학부에 재학 중이지만 중학교 때부터 시를 취미로 써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러워 혼자만의 취미로 즐겼습니다. 단순히 취미로만 시를 쓰고 제 취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4년을 보냈습니다. 다른 학우들과 다를 바 없이 높은 학점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고 시험을 보았고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으려 노력하며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학기이자 학사장교로 입대를 앞두고 있는 저는 이제 글 쓰는 취미는 한때의 추억으로 남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 단대신문에서 글 공모전이 있다는 소식을 보고 마지막으로 한 번 공모하여 보자는 마음으로 시를 공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지는 생각도 못 하였고 한편으로는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단대신문 메일 주소로 시를 보내면서 시와 저의 인연은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보낸 건데 이런 상을 받게 되니 그 취미를 졸업한 뒤에 좀 더 오래 즐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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