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휴머니즘을 되찾아줄 인문학의 가치
우리 사회에 휴머니즘을 되찾아줄 인문학의 가치
  • 설태인 기자
  • 승인 2016.03.22 17:32
  • 호수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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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의 첫 구절을 읽을 때마다 학습의 의미를 곱씹는다. 공부란 알맞은 시기에 해야 하며,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습의 기쁨을 맛보기에 대학만큼 적절한 곳이 있을까. 여러 학문의 교차로이자 벗들과의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이곳에서, 인문학도로서 큰 배움을 얻겠다며 상경한 지 딱 1년이다.

전공 공부의 재미를 알아가던 지난해 11월, 인하대학교는 문과대학 9개 학과 중 3개(사학·한국어문학·중국언어문화학)를 제외한 나머지 학과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경희대학교는 국어국문과와 전자전파공학과를 합쳐 ‘웹툰창작학과’를 만든다는 창의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우리 대학 역시 문과대학 중 4개 학과의 인원을 감축한다는 소문이 들려 잠시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돌았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본지의 보도 2면에선 이공계 위주의 취업시장 속에서 살아가는 인문대생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문송합니다’라고 자조적으로 읊조리는 선배, 동기들의 목소리에서 녹록치 않은 취업 현실이 드러났다. 학과 동기 A군은 “문과에 입학했다고 얘기하니 떨떠름해 하시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이따금 떠오른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인문학 공부를 마음껏 하고자 입학했는데 사회가 이 공부를, 아니 이 공부를 하는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인문학을 쓸모없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풍토는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이뤄낸 경제성장과 관련 있다. 이공계생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과학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한국은 ‘IT 강국’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인 업무 기술을 배우지 않은 인문대생이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존재가 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의 사회학자 W.F.오그번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물질문화의 발달속도를 비물질문화가 따라지 못하는 현상’을 ‘문화 지체(Cultural Lag)’라고 표현했다. 과학기술분야만 급속도로 발전한 우리 사회에서, 물질과 문화의 조화로운 발전을 꾀하려면 인문학이 필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혜를 탐구하는 행위’를 가장 고귀하게 여겼다. ‘사랑(Philos)’과 ‘지혜(Sophia)’가 만나 ‘철학(Philosophy)’이 되듯, 사람들은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타자를 이해하는 과정 자체에서 행복을 느꼈다. 이미 지혜를 소유한 신과 무지에 둘러싸인 동물의 경계에서 지혜 탐구는 ‘인간다움’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했다. 그들이 느꼈던 ‘학문을 배우고 실천하는 즐거움’을, 물질적인 발전에 도취한 21세기 한국에서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인 걸까.

문득 이세돌 바둑기사와의 대결로 인해 세계적인 관심사로 대두한 ‘인공지능(AI)’이 떠오른다. AI의 발전으로 인해 사라질 직종 목록에 회계사와 기술자, 서비스직은 있었지만 소설가나 철학자는 없었다. ‘문과라서 감사하다’고 말할 먼 훗날을 꿈꿔본다.

설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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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nos3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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