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촬영현장 속 보조출연 아르바이트 체험 (下) - 한 컷을 위해 눈물어린 새벽을 달리다
방송촬영현장 속 보조출연 아르바이트 체험 (下) - 한 컷을 위해 눈물어린 새벽을 달리다
  • 이시은 기자
  • 승인 2016.03.22 23:02
  • 호수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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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조출연자로 TV에 방영된 기자의 모습

대학생들에게 한 번쯤 해 보고 싶은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물으면 방송국 알바가 항상 빠지지 않는다. 분야는 보조 출연, 스텝 보조, 방청객 등으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알바는 바로 ‘보조출연 알바’로, 이 알바의 채용공고만 올라오는 사이트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요즘 많은 청년이 보조출연 알바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지난달 22일, ‘하늘기획’ 면접을 거쳐 방송촬영현장에 두 기자가 직접 보조출연자로 뛰어들어 봤다.        <필자 주>

  # 분주한 그들, 허수아비가 된 우리
“얼른들 내려요” 오후 9시 20분 역삼역 X스튜디오, 시작도 전부터 피곤함이 묻어나는 반장님의 지시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함께 온 이준우(25) 씨는 “이런 추운 날 실외 촬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촬영장에 들어섰다. 촬영 준비가 한창이지만 보조출연자들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대기 지정석에서 일렬로 자리를 꿰차고 있을 뿐이다.
각종 방송 장비를 촬영장 안으로 들이느라 쉴 틈 없는 음향 감독, 조명 감독을 비롯해 몇 번이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조연배우. 이미 분장을 모두 마친 상태지만 “우리 오빠가 다른 연예인보다 더 잘 나와야 한다”며 주연배우의 메이크업을 고쳐주기 바쁜 메이크업아티스트, 옷매무시를 가다듬어 주는 매니저의 모습까지…. 어수선한 와중에도 일사천리로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나름의 질서정연함이 느껴졌다.

  # 촬영장의 보이지 않는 힘
대기시간만 30여 분이 지난 후, 그제야 실제 촬영이 이뤄질 2층으로 올라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보조출연자에게 스피드는 곧 생명이다. 대기실에 들어가서 준비해온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라는 반장님의 재촉 섞인 지시. 준비해온 캐주얼복으로 후드티와 치마를 입고 나갔건만 “웬 치마를 입고 왔냐”, “빨리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라”는 꾸지람이 한바탕 쏟아졌다.
촬영 전, 캐주얼복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음에도 이번 일은 기자의 탓이 된 셈이다. 하지만 지나가던 촬영장 스태프의 “치마 괜찮아요” 한 마디에 반장님이 누그러졌다. 그 덕에 보조출연자한테 빈번히 벌어진다는 ‘당일 촬영장에서 귀가하는 사태’만은 피할 수 있었다.

 

▲ 연기 중 소품을 사용하는 출연자들

# 커피 대신 서운함 한 모금
오후 10시경, 모든 촬영 준비를 마쳤다. 그제야 여주인공이 촬영장에 얼굴을 비쳤다. 지각이 무슨 대수냐는 듯한 밝은 인사에 놀랐고, 스태프들의 친절한 대꾸에 또 한 번 놀랐다. 아까 봤던 그 사람들이 맞는지, 두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곧이어 촬영장으로 스태프들의 커피를 담은 수레가 들어왔다. 스태프를 비롯한 연예인, 매니저 등 모두가 커피를 한 잔씩 손에 쥐며 밤샘 촬영에 열의를 불태운다. 물론 보조출연자들에게 커피를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다. 여주인공의 대본 점검까지 마치자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 보조출연자에게 친절은 사치인가요?
촬영 감독의 제스처가 기나긴 촬영의 서막을 올렸다. 감독의 굳센 목소리가 수선스럽던 주위를 단박에 정리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어지는 감독의 손짓에 배우들이 세트장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 보조출연자들은 주로 ‘소품을 이용한 간단한 연기’를 지시받았다. 기자는 촬영장 스태프 역할을 맡아 박스 정리, 목록 확인 등을 연기했다. 보조출연자 중 한 줄이라도 대사가 주어지는 이는 몇몇 경력자들뿐이다. 대사가 딱히 없는 만큼 연기도 쉬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보조출연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은 사치, 조바심에 물었던 “동선은 어떻게 되는 거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것은 “차례 되면 다 알려주니까 기다려요”라는 스태프의 짜증 섞인 대답뿐이었다.

  # 방송업계, 눈칫밥은 필수
우리 또래로 보이는 메이크업아티스트, 신입 조명 감독이 눈에 띈다. 여기저기서 “막내야”하는 부름이 이어진다. 군기가 바짝 들어 달려가는 모습에서 방송업계의 실상을 얼핏 볼 수 있었다. ‘연차와 경력이 큰 힘을 발휘하는 곳이 방송업계’라는 말이 괜히 떠도는 것이 아니라는걸 느꼈다. 다음 배역이 주어질 때까지 기약 없이 대기하며 서 있는 시간이 계속됐다. 다리가 저려왔다. 바삐 돌아가는 현장 속에서 하릴없이 서 있는 것 자체가 곤욕. ‘빨리 뭐라도 시켜줬으면’하는 마음뿐이었다.

  # 활용도 100%, 쉬는 시간
드디어 출연자들과 맘 놓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쉬는시간이 돌아왔다. 촬영 중에는 ‘소곤소곤, 정해진 움직임’이 기본 매너다. 촬영장에서는 카메라가 포착할 수 있는 어떠한 작은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긴 대기시간을 채울 요령이 생겼다는 보조출연자 이준우(25) 씨는 “오늘은 쉬는 시간에 종이접기를 할까 했다”며 가방에서 꼬깃꼬깃한 색종이를 여러 장 꺼냈다. 그는 “배역이 없으면 정해진 쉬는 시간 외에도 대기실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공부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도 많다”고 팁을 전했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쪽잠을 청하는 김지유(24) 씨의 모습에서도 밤샘 촬영을 대하는 노하우가 느껴졌다. 일절 먹을거리를 제공하지 않은 탓에 허기가 졌는지 이우정(23) 씨는 연신 정수기 앞을 들락날락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더니 “커피와 녹차로 물배를 채우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분주한 촬영 현장

# 길어지는 촬영에 한마음이 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3시다. 그러나 촬영은 계속됐다. 이전과는 다르게 같은 장면을 다각도에서 담아내야 했다.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수차례 똑같은 연기를 되풀이했다. 여러 개의 장면이 편집을 거쳐 방송되기에, 직전의 장면과 이어지는 방향, 자세에 유념해야 한다. 이 역시 어떻게 하라고 일러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일은 스스로 부딪히고 깨지며 몸소 배워야 했다. ‘보조출연자들을 정말 신경도 안 쓰는구나’ 괜시리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새벽 어스름이 더욱 깊어질 즈음, 쏟아지는 졸음을 애써 참아낸 기색이 역력한 음향 감독이 보조출연자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말을 건넸다. “괜히 사서 고생이야, 너희는.” 보조출연자들 못지않게 촬영장 스태프들의 얼굴에도 피곤한 기색이 그득했다.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 불편함의 끝은 불편함
오전 6시 반, “컷!” 감독의 기분 좋은 외침이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맘 졸이며 지새운 지난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스태프들이 빠져나간 텅 빈 촬영장을 둘러보던 것도 잠시, 물에 젖은 솜처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촬영팀의 차로 향했다. 장장 10시간 만에 쥐어진 차가운 햄버거 하나. 고단했던 하루의 보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조촐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기대했던 급여나 업무 관련 언급은 한 차례도 없었다. “내일 촬영도 참여할 수 있는 사람 있나?” 정적을 깬 팀장님의 한 마디. 서로 돈 벌기 위해 잠시 만난, 일회성 관계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와 닿자 귀갓길에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지난 5일, 두 기자가 출연한 드라마가 방영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보조출연 알바를 겪기 전까지 드라마, 영화를 볼 때 기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숨은 곳에서 존재를 뽐내고 있는 보조출연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짧은 장면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안타까움의 탄성이 터진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다르듯, 화려함 너머 이면의 모습을 경험해봤기에 오늘도 뜬눈으로 현장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을 청년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시은·전경환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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