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타성은 ‘독(毒)’이다
백색볼펜. 타성은 ‘독(毒)’이다
  • 승인 2016.03.23 01:08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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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리즘

◇ 매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는 일을 반복한다. 신문의 ‘신(新)’은 분명 새로울 신이건만, 마냥 익숙해서 단조로움까지 느껴진다. 한결같은 성실함만이 일의 전부일 줄 알았다. 요령이 생겼을 뿐이지 열정이 식은 건 아니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그저 열심히만 이어가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생각과 행동반경이 일정한 틀에 갇혀 있는 것. 이를 타성에 젖었다, 혹은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익숙한 상황을 반복해서 겪게 되면 그 편안함에 취해 어느 순간 무료함과 마주하고 만다. 더 나아가면 사고의 틀까지 획일화돼 점차 창의성을 잃고 각종 고정관념과 고집에 휩싸인다. 익숙함이란 양면성을 띈, 이토록 무서운 존재다.
 

◇ 작년까지 즐겨봤던 SBS의 예능프로 <힐링캠프>가 지난달 초에 종영했다. 한때 전 국민을 힐링의 열풍으로 뒤덮었던 것에 비해 매우 초라한 끝을 맞이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진리를 따랐어야 했던 걸까.
 

이 프로그램이 처음 방영됐던 2011년 7월은 ‘힐링’이란 단어조차 생소하던 때였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급격한 성장과 도시화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국민들이 점차 심리학·정신과에 눈길을 돌릴 때였다. 그 시점에서, 연예인 토크쇼에 상담과 힐링의 개념을 접목한 이 프로그램은 방영되는 족족 한 주의 이슈를 장식했다.
 

◇ 그런데 <힐링캠프>가 장수프로그램으로 한창 방영될 때, 4년간 메인 MC의 자리를 지켰던 이경규가 돌연 하차를 선언했다. “매너리즘에 빠지고 열정이 식어가는 자신을 느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연이어 안방마님 성유리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판단이 옳았던 건지, 이후 프로그램은 서서히 시청자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한편, 얼마 전 매년 농구대회에서 우리은행 팀이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우리은행 팀의 성적비결은 바로 감독 위성우의 철저한 ‘선수 매너리즘 관리’라고 한다. 수비에 익숙해진 박혜진 선수의 포지션을 공격으로 옮기고, 용병 센터 사샤 굿렛의 출전시간을 일부러 늘려 강도 높은 훈련을 주도한다. 선수들이 타성에 젖지 않도록 끊임없이 다그치고 상담시간 마련도 주저하지 않는다.
 

◇ 익숙함, 지겨움, 슬럼프, 권태기…. 이들은 모두 같은 맥락으로 이어져 개인과 조직, 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 물론 때로는 맡은 업무에 있어 능숙함과 노련함이 돋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일이 ‘편안해’졌다면 상황이 다르다. 끈기 있게 이어가던 자신의 일이, 현실안주를 합리화하려는 수단으로 쓰여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때다. 과거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이 “하찮은 변화라도 단조로움이 지속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眉>

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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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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