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대사를 만나다 ③ - 주한 노르웨이 대사 ‘얀 올레 그래브스타’
북유럽 대사를 만나다 ③ - 주한 노르웨이 대사 ‘얀 올레 그래브스타’
  • 윤영빈·권혜진 기자
  • 승인 2016.04.05 17:41
  • 호수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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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생들이여, 많은 경험을 쌓고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 얀 올레 그레브스타(Jan Ole GREVESTAD) - 2007~2009 노르웨이 외교부 유럽 정책부서 정책관 - 2009~2014 라트비아 노르웨이대사관 대사 - 2016년 1월~ 주한 노르웨이대사관 대사

 

사회적 균형과 평등이 보장된
‘살기 좋은 국가’

생수 500mL 한 병에 2천500원, 코카콜라 한 캔에 4천원, 빅맥 세트가 1만5천원… 이처럼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지만, 7년 연속으로 ‘살기 좋은 나라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가 있다. 바로 ‘노르웨이’다.


일반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노르웨이는 EU의 회원국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국제사회 속에서 EU란 협력체제 없이도 선진 복지국가, 살기 좋은 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했다. 지난달 3일 대사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필자 주>

 


노르웨이 대사관은 대한문 정동길에 위치해 있다. 대사실로 향하는 복도의 작은 문턱마다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도록 경사진 길이 마련된 것이 인상적이다. 대사관 집무실에 들어가자 ‘얀 올레 그레브스타’ 대사(이하 대사)와 대학생 대사관 인턴인 ‘에네 베으뮤테즈’(이하 에네) 씨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가벼운 인사로 한국의 첫인상을 묻자 대사는 “도시 곳곳에 높은 산이 있어 도시와 자연이 조화로우며 사회 내의 자양성이 인상적이다. 한국은 과거 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빠르게 성장한 점이 대단하다”고 답변했다.

 

‘모든 국민은 국가와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룰

농업과 어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노르웨이는 과거부터 부유층이 적었고 기술과 인적자본도 타 국가에 비해 부족했다. 때문에 한정적인 재원을 함께 나누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여겨왔다.


대사는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사회일수록 ‘균형’을 중시해야 하며, 균형의 핵심은 부의 재분배”라며 “재분배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의 사회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급기야 납세까지 거부하게 돼, 사회적으로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고 설명했다.
한국 복지의 현주소를 묻자 대사는 노르웨이 국민과 기업의 세율을 각각 예로 들었다. “현재 한국 정부가 국민과 기업에 부과하는 세율만으론 제대로 된 복지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다. 세금을 높여 더욱 수준 높은 복지를 실현할지 여부를 결정해야할 중요한 시기인 셈”이라고 답했다.


또한 대사는 노르웨이 국민은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룰을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르웨이 사회에선 상류층이 전체를 위한 재정부담을 좀 더 짊어야 한다는 양해가 이뤄져있다.

▲ 출처:visitnorway.com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한 성평등 정책

공공기관 임원의 40%이상을 여성으로 정하는 ‘여성임원할당제’를 2003년도에 세계 최초로 도입한 노르웨이는 이를 점차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오늘날 노르웨이 정부 내각의 47.1%, 기업 이사회의 38.9%가 여성으로 구성돼있다. 이는 한국의 고위 공무원단 중 5%, 기업 이사회 중2.1%가 여성으로 구성된 것과 대조된다.


대사는 30년 전 아들을 낳았을 당시를 예로 들며 “30년 전에도 2주간의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사항들이 제도적으로 점차 확대 돼, 현재 30살이 된 아들은 부인과 가사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를 듣고 있던 에네 씨 역시 “남성도 여성과 똑같이 가사노동을 부담한다. 이처럼 사회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남녀평등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출처: visitnorway.com

대학생에게 보다 다양한
경험을 요구하는 사회

노르웨이 대학생과 한국 대학생의 차이를 묻자 대사는 가장 먼저 ‘성적’을 꼽았다. 노르웨이의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에 비해 성적에 덜 신경 쓴다는 것이다.


대사는 “노르웨이의 기업은 취업 시 대학 성적보단 학생 신분 이외의 경험을 더욱 중요시 한다”며 “성적을 일정 수준 반영하지만, 그렇게 높진 않고 그보단 인턴경력과 타국에서의 경험, 학생회 활동 등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답했다.


사제관계 또한 차이점으로 꼽았다. 노르웨이는 교수와 학생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인 반면, 한국의 교수와 학생관계는 다소 수직적인 인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대사는 “한국은 OECD 통계에서 대부분 상위권에 속하지만 생산성은 26위 정도로 낮은 편”이라며 “이러한 원인은 개인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기 힘든 계급문화인 것 같다”고 말했다. 상관에게 먼저 묻는 절차가 생산성의 한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에네 씨는 고려대학교에서 2년간 국제학을 공부한 경험을 빗대어 “한국의 커리큘럼은 한 학기에 6~7과목을 배우는데 반해, 노르웨이에선 2~3과목을 꼼꼼하게 배운다”고 답했다. 이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대외활동을 중요시하는 건 맞지만, 노르웨이 역시 요즘은 점차 경쟁적인 분위기가 생겨 성적관리도 열심히 한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이 취업 문제에 유독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업과 석유를 바탕으로 구성된 산업

노르웨이는 2008년 경제위기 당시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은 국가 중 하나이다. 바로 같은 해 유가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석유 산업이 잘 발달됐으며, 연어 양식 같은 어업도 세계 2위이다.


대사는 “석유 산업과 어업은 한 지역에서 공존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석유 시추에 작은 실수라도 있으면 어업에 막대한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현재 노르웨이는 이 부분을 잘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노르웨이가 EU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자신이 노르웨이의 EU관련 정책자문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먼저, 유럽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노르웨이는 지리적으로 민족주의적인 성격이 있다. 대사는 ‘민족주의’라는 단어를 한국이 한국적인 것, 한국인에 집중하는 문화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EU가입 시 노르웨이의 주요 산업인 석유 산업과 어업에 큰 타격이 생길 것이 우려돼 가입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EU 가입논의가 유럽에 활발하게 있을 당시 노르웨이의 옆나라 스웨덴은 국민의 50.5% 동의로 EU가입을 결정했다. 반면 노르웨이는 EU와의 협상을 마무리했으나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48.5%만이 EU가입에 동의해 협상을 취소했다. 노르웨이는 EU가입 찬반과 관련해 4~50년간 복잡한 논의를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 출처:visitnorway.com

대사의 한마디


“노르웨이 여행은 여름이 매력적”
노르웨이는 오슬로, 베르겐 같은 도시뿐만 아니라 피오르드, 오로라 등 빼어난 자연경관으로도 유명하다. 노르웨이를 여행하기 좋은 시기로 ‘여름’을 추천했다.
“개인적으로 여름의 노르웨이를 선호한다. 특히 여름의 노르웨이 북쪽 지역은 해가 지지 않는 백야현상으로 계속 밝은 한편, 겨울은 항상 어둡다”며 “산을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다른 나라보다 노르웨이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라 말했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가치 찾아야”
한국 학생에 대한 조언으로 대사는 조심스럽게 “한국에서는 공부를 매우 중시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공부가 다가 아니다”며 “한국의 국민들이 부유하고 활기차며 삶의 질 또한 높을 줄 알았는데, 통계상 자살률이 높아 많이 놀랐다”고 답했다.


이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간적인 부분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 대학생들 역시 짬을 내서 이러한 고민을 하는 시간을 많이 갖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윤영빈·권혜진 기자
윤영빈·권혜진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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