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어주는 기자 <4>『구토』
고전읽어주는 기자 <4>『구토』
  • 설태인 기자
  • 승인 2016.04.05 17:42
  • 호수 14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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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삶의 끝에 발견한 ‘자유’라는 진주

“나에게는 존재할 권리가 없었다. 나는 우연히 생겨나서 돌처럼, 식물처럼, 세균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구토』 156p 中)

저 자 장 폴 사르트르 책이름 구토 출판사 하서출판사 출판일 1999. 8. 4 페이지 365쪽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은 18세기의 무명 인물인 롤르봉 후작에 대한 전기를 기록하는 지식인이다. 프랑스 작은 도시에서 글쓰기에 몰두하던 어느 날, 우연히 과거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주웠을 때 느꼈던 ‘구토’를 떠올린다. 이제 그는 어떤 사물을 마주칠 때마다 구토를 느끼며 그것은 이내 로캉탱을 둘러싼다. 자신의 삶이 롤르봉의 존재를 역사에 기록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느끼곤 도무지 견딜 수 없어 전기 집필마저 그만둔다. 동시에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로캉탱은 ‘존재’란 아무런 이유나 목적 없이 세상에 내던져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사르트르는 『구토』에서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 명제를 로캉탱의 깨달음에 빗대어 전한다. 그가 책을 출판한 20세기 초 유럽은 근대사회 발전과 함께 뿌리내린 합리주의가 우세하던 시대였다. 많은 사람은 세계가 오직 이성과 논리로만 설명된다고 믿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명백한 존재 이유가 있으며,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누가 인간에게 존재이유, 즉 본질을 부여할 수 있는가를 의심했다. 만약 인간의 본질이 이미 결정돼 있다면 개인은 그 결정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세상에 우연히 던져진 자율적인 존재이지, 정해진 본질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로캉탱은 구토감에 휩싸여 공원을 거닐던 중 고목의 뿌리를 발견한다. 뿌리는 누군가 그것의 존재 이유를 밝히거나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변함없이 존재한다. 그들은 우연히 뿌리로 태어났을 뿐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성별이나 국적, 나이 등은 나를 구성하고 있는 우연한 요소일 뿐 다른 인간보다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요소들의 우열을 가리곤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금수저가 흙수저를 동정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일명 ‘한남충’과 ‘김치녀’라 부르며 혐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철수가 금수저이자 남성이라 해도 그렇지 않은 영희를 차별하고 무시할 권리는 없다. 철수 역시 흙수저, 혹은 여성으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캉탱의 깨달음은 우리가 서로를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보게 해준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이 구토가 나올 정도로 지루하다고 말한다. 우리 삶에 아무런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는 사실 또한 단번에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무의미’를 통해 ‘삶의 의미’를 역설한다. 삶에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인간은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며 그것을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제 독자들은 로캉탱과 함께 ‘어떻게 하면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보낼지’ 고민하는 여정을 떠나게 될 것이다. 사르트르가 남겨준 삶에 대한 자유라는 무거운 짐이자 황홀한 선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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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nos3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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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09-08 15:12:28
감사합니다ㅠㅠㅠ 구토 내용 관련해서 고민중이었는데 이해가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