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백<44> 김구의 가족들
역사고백<44> 김구의 가족들
  • 김명섭 사학과 강사·역사칼럼리스트
  • 승인 2016.04.05 17:57
  • 호수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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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임시정부가 수립되던 4월에 어머니를 추억하다

오는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국땅 상해에서 수립된 지 97주년이 되니, 3년 후면 100년이 되는구려. 내 임시정부 경무국장으로 첫발을 내딛은 이래 주석에 올라 온갖 풍파를 겪어 할 말도 많지만, 오늘은 75년 전 4월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회상하려 하오. 임시정부를 지킨 숱한 열사와 지사들이 있지만, 이름 없이 온갖 궂은 일을 뒷바라지했던 여인들의 삶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오.   

내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185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4세 어린 나이에 남편 김순영과 결혼해 난산 끝에 아들인 나 김구를 낳았소. 어머니는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아들 교육에 힘써 일찍이 천자문과 사서삼경을 가르쳤지요. 내 9살에 할아버지를 잃고 아버지도 병환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집안이 크게 기울었지만, 어머닌 나를 과거에 응시하도록 도왔지요.

그러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내가 21살 혈기로 치하포 주막에서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찔러 죽여 사형선고를 받게 되면서 나와 어머니의 운명도 바뀌었소. 내가 사형집행 직전 고종황제의 특사로 생명을 건졌는데, 어머닌 인천감옥에 갇힌 나를 매일 찾아와 위로해 주었지요. 그녀는 1910년 국망에 이르러 신민회 사건으로 다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내 옥바라지를 하면서 바느질과 가정부 일을 마다하지 않았죠. 특히 이 무렵 실의에 빠져 자살을 고민하던 내게 “아들아 난 네가 경기도 감사가 된 것보다 더 자랑스럽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어요. 

1919년 3월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여한 나를 찾아 60세의 어머니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상해로 오셨어요. 어머닌 나와 임정 요인들이 먹을 양식이 없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자, 근처 주택가의 쓰레기통을 뒤져 배추 시래기로 죽을 끓여 주셨지요.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우리 내외와 임정 요원들이 푼돈을 모아 드린 적이 있었어요. 

어머닌 그 돈으로 생일날 저녁 국무위원들을 초대했는데, 식탁에 내놓은 것은 음식이 아니라 보자기에 싼 권총 두 자루였어요. 그러면서 “이 시국에 무슨 놈의 생일이냐, 그럴 돈으로 왜놈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만 속이 편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 1945년 70세 무렵의 김구와 큰 아들 김인(왼쪽), 둘째 아들 김신(오른쪽). 곽낙원 여사의 사랑을 받아 청년공작대의 투사로 활동한 큰 아들 김인은 불행히도 해방을 5개월 앞두고 사망했다.

임시정부 요인의 부인들이 돈을 모아 옷 한 벌을 선물한 적도 있었는데, 옷을 받아든 어머니는 “남편들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 하는데, 여편네들은 호의호식 하는가!”라며 갈기갈기 찢어 내던지시더군요.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기 전 나석주 의사가 내 생일날에 자신의 옷을 저당 잡아 고기와 반찬거리를 사서 어머니께 갖다드린 적이 있었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손님들이 돌아간 후 회초리를 들고 50살 넘은 내 종아리를 사정없이 후려치면서 야단치시더군요. 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어야 했지요.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중국정부를 비롯해 미주·일본 등 각지의 한인들로부터 성금이 들어오게 되자, 어머니가 안살림을 맡아 독립자금을 관리해 주셨어요. 그 무렵 어떤 이가 농담 삼아 “그 돈으로 고기라도 먹고 싶다”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동료가 피를 흘려가며 벌어온 돈으로 어찌 고기를 먹는다 하는가” 하며 화를 내며 회초리를 또 들으셨어요. 

그렇게 알뜰하고 절실하게 조국광복을 기원했던 어머니는 해방을 곧 앞둔 1939년 4월 26일 80세의 일기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애통하게도 먼저 가서 내 눈으로 독립은 못 보지만, 꼭 네 눈으로 봐주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기셨어요. 매년 목련꽃에 진달래 피는 4월이 오면 임시정부 수립기념일로 마음이 들뜨지만, 조국독립과 평화통일을 기원했던 내 어머니, 아니 한민족의 어머니이며 한 여성독립투사였던 곽낙원 여사의 당찬 결기가 새삼 가슴 시리게 그리워지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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