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탐구③ 커피

커피 한 잔, 음악 한 곡 장유정 교양학부 교수l승인2016.04.05l수정2016.04.05 21:48l1408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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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봄이로구나! 이럴 때는 달콤 쌉싸래한 검은 액체의 힘이 필요해진다. 다들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커피’의 기운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커피를 내린다. 연구실 가득 커피향이 퍼진다. 커피를 마시며 아주 잠깐의 휴식과 여유를 가져본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등장한 것은 서양과 접촉하면서였을 것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있었던 1882년이나 그보다 더 일찍 천주교를 전파한 성직자들이 이 땅에 커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화가 김용진은 1884년 갑신정변 이후 위안스카이가 통상 전권위원으로 올 때 커피가 들어왔다고 회고한 바 있다. 처음에 커피가 주로 상류층이나 외국인들이 마시던 기호품이었다면, 1930년대는 찻집, 끽다점, 그리고 다방이라 불리는 곳에서 일반 사람들도 커피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중가요에도 커피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대중가요 가사에 커피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예로는 남편인 김해송이 작곡해 아내인 이난영이 부른 <다방의 푸른 꿈(1939년)>을 들 수 있다. 블루지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노래에서 커피는 “고요한 찻집에서” 떠난 임을 그리워하며, 홀로 마시는 커피였다. “내뿜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찻집에서 화자는 커피를 마시며 “그리운 옛날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1930년대 다방에서는 커피 말고 무엇을 팔았을까? 그건 김장미가 1939년에 부른 <엉터리 대학생>의 3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사에 나온 것처럼 당시 다방에서는 홍차·소다수·커피와 더불어, 포트와인을 뜨거운 물에 타고 설탕을 탄 음료인 포틀랩 등을 팔았다.


1930년대에 <다방의 푸른 꿈>이 있다면, 1960년대는 신중현이 작곡해서 펄시스터즈가 노래한 <커피 한 잔>이, 1970년대는 나훈아가 부른 <찻집의 고독>이 있다. 1968년에 발매된 <커피 한 잔>에서는 커피를 시켜놓고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화자를 만나게 된다. 신중현 씨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이 노래는 펄시스터즈가 1969년 MBC 10대가요제 가수왕이 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또 1991년에 모 제과 회사가 커피 아이스크림인 ‘커피 한 잔’을 개발하고 <커피 한 잔>을 광고음악으로 사용하여, 이 노래가 새삼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아울러 1971년에 발표된 <찻집의 고독>에서도 임이 떠난 다방에서 “싸늘하게 식은 찻잔에 슬픔처럼 어리는 고독”을 마시는 화자를 만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1994년에 발매된 김성호의 3집 음반에는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긴 제목의 노래가 실려 있다. 서정적 가사가 차분한 기타 반주 및 기교 없이 담담하게 부르는 보컬과 어우러져 아련하게 다가오는 노래이다. 가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란 말이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요즘이기에 나는 그녀를 감히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싫었어”라고. 과연 천사와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어떨까?


이처럼 1990년대까지도 대중가요 속 커피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이어주는 일종의 매개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의 대중가요 속 커피는 일상으로 파고들거나 커피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은 2008년에 장기하가 부른 <싸구려 커피>이다. 장기하는 “역시 가수는 외모가 중요하지”라고 생각하던 차에 실력마저 출중한 ‘얼굴들’을 만나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한 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노래 중간의 말하듯이 읊조리는 랩이 압권인 <싸구려 커피>는 ‘88세대’의 현실을 반영하면서 많은 이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어서 음원이 공개되기 전부터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 10cm의 <아메리카노>는 2010년에 발매된 이래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여기서 커피는 이제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가 된다. 즉 매개체에 불과하여 조연이었던 커피가 노래 속 주연으로 지위가 상승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5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커피의 주당 소비 빈도는 12.3회로 배추김치(11.8회)와 쌀밥(7회)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메리카노 커피 1잔(10g)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338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구체적인 수치가 아니라 길가에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커피전문점만 봐도 주연으로 우뚝 선 커피를 느낄 수 있다. 허나, 커피가 조연이든 주연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커피 한 잔과 음악, 그 두 가지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라.


장유정 교양학부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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