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재난안전본부 - 소방관의 안전에 빨간 불이 떴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 소방관의 안전에 빨간 불이 떴다!
  • 이상은·김태희 기자
  • 승인 2016.04.05 22:25
  • 호수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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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국민 신뢰도 1위라는 빛나는 명예를 가진 직업인 ‘소방관’. 하지만 그 실상은 매우 열악하다. 국민안전처의 통계에 따르면 소방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치료필요군은 6.3%로 일반인의 0.6%에 비해 10배 이상 높았고, 우울장애 치료필요군은 10.8%, 수면장애 치료필요군은 21.9%, 특히 한 가지 이상 장애 치료필요군은 3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관의 안전이 도리어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11월경, 정부는 약 39억원을 투자해 소방관의 정신 질환 예방 및 치료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의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상담과 치료비 지원 등 일회성 처방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소방관 처우의 실상은 어떨까. 수원시 소재의 경기도재난안전본부를 찾아 직접 현장을 살펴봤다. <필자 주>


 

"잦은 장난전화에 열악한 처우까지…
지금은 ‘소방관 수난시대’"

# 화재 발생, 긴급 출동 바람!
소방서에 도착, 의자에 막 앉자마자 귓등을 때리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 “현재 13시 하이테크 건물에서 화재 발생. 긴급 출동 바람!” 2분이나 걸렸을까,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소방복으로 갈아입고 본부를 나서는 대원들. 그들의 뒷모습에선 망설임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오히려 두 기자의 혼이 쏙 빠져버렸다.


조금 전 떨어진 출동 명령에 텅 빈 관내 한구석에서 움직임이 포착됐다. 장비 점검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소방관들이다. 개인 장비, 소방차량 장비 등 여러 장비를 꼼꼼하게 점검한다. 이를 소홀히 했다간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기에 하루라도 게을리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장비 점검으로 정신없이 바쁜 차고지를 지나 도착한 곳은 경기도 재난종합지휘센터.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경기도 권역별 현장대응 현황을 보여주는 대형스크린과 사방에서 울려대는 신고 전화.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기에 노련한 소방관도 이곳에서만큼은 엄청난 긴장상태다.


수백 대의 컴퓨터와 통신시스템에서 나오는 열기로 후끈한 내부. 경기도민의 신고는 모두 이곳으로 접수된다. 신고 접수와 처리가 단 몇 초라도 늦어지는 순간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취재 전에 느낀 호기심과 설렘으로 인한 두근거림과는 다른 초조한 심장 떨림이 느껴졌다. 365일, 24시간 박동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까. 여러모로 ‘심장’과 많이 닮아있다. 궁금한 점을 물어보려던 찰나, 스크린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장내가 어수선해진다. 또 출동이다.

 # 빠듯한 하루와 실추되는 명예
신고 전화 중엔 장난전화도 상당수다. “아이가 아프다는 신고에 출동했더니 반려동물을 지칭하는 거였더라고요” 현직 소방관의 한 마디에 한숨이 섞여 있다. 경기도 소방관들은 하루 평균 50분마다 1건의 화재진압, 7분마다 1명의 인명구조, 1분 30초마다 1명의 환자를 이송한다. 이렇게 빠듯한 상황 속에서 장난전화로 인해 출동이 지연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소방관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얼마 전 여성소방관을 폭행한 50대가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폭행범은 처벌을 받았지만, 대부분은 처벌이 쉽지 않다. 또한, 현장 안전사고 예방조치란 구실로 현장 근무 시 폭행을 당해 상해를 입어도 ‘치료비를 지원받기 어렵고, 상여금을 삭감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적잖다. 이러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 생명과 직결되는 그들의 1초
지휘센터를 나와 실제 출동팀이 근무하는 상황실에서 화재진압팀을 만났다. 화재진압팀 김현경 소방교가 특히 긴장하는 순간은 산불 진압을 위해 출동할 때다. “다른 화재 진압 상황보다 무거운 장비가 많아 이동이 어렵고, 화재 범위도 넓어 잔불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에겐 ‘1초에 불과’하지만, 소방관에게 ‘1초의 헛됨’은 용서받지 못한다. 그들에게 1초는 골든타임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누군가 한 명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소방관들이 힘든 순간은 언제일까. “가족과 명절을 함께 보내지 못해 저만 동떨어진 느낌을 받곤 하죠. 하지만 내가 쉬면 동료는 내 몫을 더 해내야 하니까 미안한 마음에 휴가는 반납하게 돼요”


휴가는 1년에 20일 남짓 주어지지만 사실 그마저도 절반을 채 쓰지 못하는 상황. 단 한 명의 결원에도 소방서 운영엔 차질이 생긴다. 공백을 채우지 못하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병가조차도 마음대로 낼 수 없는 소방관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괜스레 드는 안타까운 마음에 표정이 굳어지자 오히려 기자를 다독이는 김 소방관의 말, “우리가 아니면 누가 여러분을 지키겠어요?” 강단 있는 한 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 잊지 못할 한 마디
김 소방관에게 잊지 못할 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택가에 경보기를 설치하거나 소화기를 비치하는 것도 소방관의 업무 중 하나에요. 한 번은 혼자 사시는 어르신 댁에 가서 소화 장비를 설치해 드린 적이 있어요. 늘 하던 일인데도 그때만큼은 느낌이 조금 달랐어요. 단순히 소화기를 비치하는 일에 지나지 않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발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한 사람을 도와주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라며 소방관 인생 중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을 회고했다.


진심이 담긴 고맙다는 말 한 마디,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 슈퍼맨, 히어로의 남모를 고충
“저는 나중에 커서 불을 끄는 훌륭한 소방관이 될 거예요” 초등학교 시절, 반마다 한 명씩은 소방관을 꿈꾸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 소방관은 괴물같이 무시무시한 불길을 단번에 제압하는 슈퍼맨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은 우리의 영웅이다.


“소방관이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 해줘?” 쏟아지는 민원에도 군말 없이 해결해야만 한다. ‘시·도 119종합상황실 상황관리 개선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동안 걸려오는 119신고 전화의 44%가 긴급하지 않은 단순 민원성 전화로 나타났다. ‘소방관은 영웅’이라는 전제 하에 무수한 희생을 요구하는 우리의 이기심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 역시 영웅이기 전에 한 인간인데 말이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내가 늘 깨어 살필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

2001년 홍제동 참사 때 순직한 김철홍 소방관의 책상 위에 남겨진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다. 국민의 안녕을 위해 살아가는 소방관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땀방울과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이제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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