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시선 3. 흡연규제

담배연기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김태희 기자l승인2016.05.03l수정2016.05.03 15:29l1410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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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1] 흡연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지 올해로 25년째. 나는 하루에 2갑씩 담배를 피우는 전형적인 애연가다. 고단한 삶 속에서 담배는 유일한 안식처다. 담배를 사랑하지만, 담배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준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다. 길거리에서도, 아이들이 앞에 있을 때도 담배를 입에 물지 않았다. 누구보다 흡연 에티켓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흡연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 담뱃값은 나날이 인상되고, 마음 놓고 흡연할 공간조차 마땅치 않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람들의 혐오스러운 시선이다. 지정된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워도 벌레 보듯 흘기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대다수다. 아내의 잔소리도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회사에서도 비흡연자와 흡연자 사이에 차별을 두는 듯하다.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알게 모르게 소외감을 느낀다.
‘많은 세금을 내고 담배를 사는 행위에 그것을 사용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은 것일까?’, ‘담배를 피운다는 것 자체가 질병과 동일시돼 교정해야 하는 행위일까?’, ‘나는 병자이며 범법자일까?’ 자조적인 씁쓸한 생각과 함께 오늘도 비좁은 흡연 부스 안에 숨어 간신히 담뱃불을 붙인다.

 

● [View 2] 비흡연자
매일 가족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는 지독한 애연가였다. 퇴근 후 돌아온 아버지의 외투에서는 늘 묵은 퀴퀴한 담배 냄새가 났다. 30년간 하루에 한 갑 넘게 담배를 피우신 아버지는 결국 내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까마득한 기억이지만, 여전히 나는 담배 연기가 싫고 역겹다.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지하철역 주변마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은 그들의 담배 연기가 타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핀잔에 “내 돈 내고 내가 피우겠다는데 댁이 뭔 상관이냐”는 적반하장식의 대답이 돌아오니, “그 돈 줄 테니 다른 곳에서 피워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 때문에 외출할 때 마스크는 필수가 돼버렸다. 특히 담배 연기가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걱정스런 마음이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간접흡연에 대해 아무런 경각심이 없는 사회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흡연행위 자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담배를 피울 자유가 있다면 나에겐 담배 연기를 마시지 않고 살 자유가 있다. 평생 마스크를 쓰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Report] 흡연권과 혐연권
정부가 금연구역 확대, 담뱃값인상, 실내흡연규제에 이어 담뱃값 경고 그림 부착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키며 흡연규제와 관련된 문제가 다시금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지난해 1월 1일부터 실내 음식점·카페·피시방 등이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후에 실내에서 흡연구역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지자체들 역시 흡연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이다. 서울시는 이달 1일부터 지하철역 1천662곳의 출입구 10m 이내를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키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광범위한 흡연규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흡연할 곳이 사라진 흡연자들이 단속을 피해 골목이나 아파트 단지 등에서 담배를 피움에 따라 간접흡연은 오히려 늘고 있는 것. 과거 간접흡연에 둔감했던 비흡연자들 역시 ‘담배 냄새를 맡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며 비흡연자와 흡연자 사이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흡연에 관해 충돌하는 권리는 ‘흡연권’과 ‘혐연권’이다. 흡연권은 ‘별다른 제재 없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리’이다. 반면 혐연권은 ‘비흡연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공공장소 같은 공유 생활공간에서의 흡연규제를 호소하는 권리’이다. 
문제는 이 두 권리 모두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된 기본권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편을 들어줘야 할까. 헌법재판소는 비흡연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사생활의 자유와 생명권을 동시에 포함한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 기본권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법적 규제 이전에 선행돼야 할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아닐까. 비흡연자들은 흡연자들에 대해 선입견을 품지 않고, 흡연자는 비흡연자들을 위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회. 그런 아름다운 사회를 기대해본다. 


김태희 기자  3213057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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