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정보화 사회의 혜택과 부작용
백묵처방 - 정보화 사회의 혜택과 부작용
  • 나연묵
  • 승인 2003.11.25 00:20
  • 호수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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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묵
<공과대학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전공>

학창 시절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을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농업 혁명, 산업 혁명에 이어 정보화 혁명으로 가고 있다는 요지의 이 책에서 아직까지도 인상에 남는 내용은 ‘정보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미래 사회는 모든 가정에 컴퓨터가 설치되고 이것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재택 근무가 보편화될 것이며, 이러한 발달로 인해 심지어는 사무실의 필요성이 없어져 그 결과 그동안 존재해온 도시라는 형태마저도 붕괴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현대 사회가 토플러가 예상했던 이 정도까지 변화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원격 교육이나 재택 근무는 어느 정도 현실화된 상황이다. 이러한 발전은 교육 기회의 확대, 교육 컨텐츠에 대한 시간 제약이 없는 용이한 접근, 출퇴근으로 인한 낭비 시간의 감소 등 여러 가지로 혜택을 주고 있다.
컴퓨터 중심의 정보 기술과 휴대폰 중심의 통신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인간 사회를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개인용 컴퓨터, 노트북, PDA, 태블릿 PC, 휴대폰의 등장과 이러한 제품간의 융합 현상으로 인해 현대인의 생활 방식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심지어는 TV, VCR, 카메라, 캠코더, 냉장고와 같은 일반 가전 제품도 디지털화되어 서로 연결되는 디지털 수렴(digital convergence) 또는 유비퀴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의 추세가 거대한 폭풍과 같이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급속한 정보화의 진행에 따른 이러한 변화의 길목에서 요즘은 문득 과거의 생활에 대한 비교를 해보게 된다. e-메일이 보편화되기 전에 태평양 건너 미국의 연구자와 의사소통을 할 때는 편지를 사용하였다. 답장이 오기까지는 2주에서 한달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동안은 다른 일들에 몰두할 수 있었다. 요즘은 국제 활동에 참여하면 관련 안건을 만들어 e-메일로 발송하게 되고, 부지런한 상대방은 바로 불과 몇 분 만에 그 답변을 보내오기도 한다. 그 결과, 잠시의 여유도 없이 그에 대한 대응을 위해 보완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휴대폰 문화도 그와 유사하다. 과거에는 연구실을 벗어난 외부에서는 전화를 받을 일이 없었지만 요즘은 휴대폰으로 어디에 있든지 거의 항상 연결이 된다. 개인적으로 휴식을 원하는 시간에도 휴대폰은 울려대고 조용한 사색에 잠길 시간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정보와 통신 기술의 발달은 분명히 우리에게 비약적인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인의 집중력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현대인을 점점 더 조급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과 홈 페이지, 특히 게시판 문화는 국내에서 상당히 앞서 있는 것 같다. 외국의 경우는 USENET을 중심으로 한 전문 분야 지식의 공유에서 출발하였으나, 국내의 경우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주고 받는 커뮤니티 기능이 보다 활성화되어 있다. 상대방을 직접 보고 말로 표현하던 시절에 비해, 게시판에 올리는 익명의 글은 표현의 조심성이 줄어들어 다소 무례한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일부 사람들은 채팅과 게임 등에 지나치게 열중하여 생산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빼앗기기도 한다.
이 외에도 정보화에 따른 부담은 적지 않은 듯 하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배달되는 스팸 메일을 지우기 위해서 매일 시간을 빼앗기고, 어쩌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를 원상 복귀하기 위해 소중한 몇 시간을 소모하고, 잠시 방심하면 해킹 프로그램이 몰래 귀중한 정보들을 빼내간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사용한 날의 저녁은 눈이 피곤하고 뻑뻑한 안구건조증 증세가 나타나고 손목이 뻐근하고 쑤시는 손목골증후군(carpal tunnel syndrome)이 나타난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귀에 대고 사는 사람들은 적지 않은 전자파에 노출된다.
이러한 부담 혹은 부작용은 현대인이 누리고 있는 수많은 혜택에 대한 대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고 살기에는 이미 현대의 생활이 복잡하게 변화되어 있다.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문제들을 인지하고 예방 조치가 알려져 있을 경우에는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는 주기적으로 자동 실행되는 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모니터는 창문을 등지게 배치하지 않고, 눈에 피로를 적게 주고 전자파 발생도 적은 평판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고, 눈이 뻑뻑한 날에는 인공누액을 눈에 뿌리고, 키보드의 위치는 모니터 위치보다 밑에 놓고 팔의 팔꿈치 위치와 평행하거나 그보다 밑에 오게 하고,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서 약간 비스듬히 기대어 하체에 대한 혈류의 압력을 줄이고, 컴퓨터 작업은 장시간 진행하기 보다는 일정 간격으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등의 사항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는 예의에 어긋하지 않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채팅이나 게임은 최대 시간을 정해놓고 자제할 필요가 있다. 가끔은, 물론 업무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컴퓨터와 휴대폰을 꺼놓고 과거의 인류가 누렸던 여유를 느껴보는 것이 우리 인생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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