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담은 모창으로 감동의 전율을 선사하다

■ 히든싱어 모창 능력자 김정준 씨 -창학이념 자주(自主) 이상은 기자l승인2016.05.10l수정2016.05.10 12:50l1410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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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김진호’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파란만장한 음악인생…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거듭나고파”


 

<Prologue>
성대모사는 개그맨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 단순한 성대모사를 뛰어넘는 ‘모창’으로 대한민국의 최고 자리에 도전한 청년이 있다.
바로 JTBC의 ‘히든싱어 왕중왕전’에서 SG워너비 멤버 김진호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세간의 이슈를 일으켰던 김정준(27) 씨. 중학생 때 들었던 SG워너비의 노래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학창시절 줄곧 김진호의 노래만 듣던 그가 이젠 ‘제2의 김진호’로 불리고 있다.
히든싱어에서 제2의 김진호로 인정받기까지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모창능력자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고 노래를 배우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전국을 오가며 배움을 실천했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김진호에 대한 남다른 팬심과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시련을 스스로 극복하는 오뚝이의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 대학의 설립이념 중 하나인 ‘자주’는 스스로가 주인인 삶을 의미한다. 모창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감정을 전달하며 자주를 실천한 그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모창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김진호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변성기가 왔을 무렵 SG워너비를 ‘죄와 벌’이라는 노래로 처음 접했다. 노래를 듣는 순간 김진호의 굵직하고 남성스러운 목소리에 반했다. 그때부터 그의 노래만 찾아서 듣고, 비슷하게나마 따라하고 싶어 동영상을 보며 연습했다.

▶모창은 어떻게 연습했는가.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노래를 들려줄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음악적 지식이 없어서 김진호의 창법에 대한 정보도 무지했고 발성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도 몰랐다. 단지 목소리만 따라 하려다 보니 억지스럽고 이상하기만 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본격적으로 작곡가를 찾아다니며 음악에 대한 지식, 호흡법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을 배워가며 기반을 다잡아갔다.

▶그렇다면 본인이 터득한 김진호 모창의 비결은.
김진호는 흔히 말하는 소몰이 창법이지만, 목소리가 굵으면서도 고음을 잘 낸다. 대부분 사람들은 보통 김진호 모창을 할 때 목소리를 쥐어짜 음을 못 올리고 힘들어하곤 한다. 하지만 무작정 목소리만을 따라 했다간 목에 무리가 올 위험이 크다.
제대로 된 모창을 하려면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때문에 자신만의 목소리를 편하게 낼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노력한다면 70% 정도는 성공했다고 본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돋보이는데, 대학은 공과대학으로 진학했다.
삼육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음대에 가고 싶었지만 공대 진학을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반수를 준비하던 중 아버지가 “아직도 음악에 꿈이 있다면 다시 시작해보는 것이 어떠냐”며 트로트 악단장을 소개해주셨다. 트로트보단 발라드가 하고 싶었지만, 당시엔 아버지의 지원에 대한 감사함이 커 트로트 악단에 들어갔다.

▶트로트로 음악의 첫 발을 내딛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악단장은 “가수가 노래를 편식하면 안 된다. 트로트 가수로 시작하는 것이 시장성이 있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목을 혹사하는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게 해 목 상태가 만신창이가 됐다.
트로트 앨범을 내기 한 달 전에 진료를 받아보니 3개월에서 반년 정도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수준으로 목이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앨범 준비에 많은 시간과 돈이 투자됐던 터라 차마 예정돼있던 녹음을 미룰 수 없었다. 결과는 참담했고 앨범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가 됐다.

▶악단장과의 일화가 MBC 예능 ‘진짜 사나이’에 소개됐다.
상병 시절 진짜 사나이에 출연했다. 트로트 가수와의 일화를 예능으로 잘 연출했던 방송으로 기억한다.
내 삶의 치부였던 첫 앨범이 방송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오히려 그 덕에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세상에 알려진 이상 숨기기보단 아름다운 과거로 남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군대에서 음악을 쉬면서 목 건강을 회복했지만, 너무 크게 데였던 탓인지 프로그램 방영 후에도 음악을 다시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음악을 쉬는 동안에는 무엇을 하며 지냈나. 또, 평소 취미생활은.
음악을 쉬는 동안에는 학생의 본분대로 미뤄왔던 공부를 시작했다. 열심히 한 만큼 성적도 잘 나와서, 탄력을 받아 방학 때에도 공부를 계속 이어갔다.
취미는 운동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하게 운동을 했다. 운동은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제여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항상 헬스장으로 향하곤 했다. 나중엔 습관으로 굳어져 군대에서도 열심히 운동했고, 올해는 보디빌딩 대회에도 나갔다.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전역하고 전공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히든싱어4’의 전단지를 보게 됐다. 수많은 가수 중 김진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음악, 특히 모창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다. 그렇게 다시 아픔을 딛고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음악학원이나 교육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노래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제대로 된 교육기관에 들어가서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서울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교는 예술을 가르치기에 너무 정형화돼 있었다. 노래 부르는 스킬은 배워서 늘 수 있지만, 감정은 남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만의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기 위해 서예종을 그만뒀다.

▶히든싱어 무대를 준비할 때 가장 힘이 났던 조언이 있다면.
사실 개인적으로는 조언을 싫어한다. 대회를 준비하는 입장에선 ‘힘내’라는 가벼운 응원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런 성격 탓인지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뭘 하든 즐겨라’는 김진호의 말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내 우상이 이런 말을 해주니까 더욱 힘이 났다.

▶히든싱어 왕중왕전에서 2등을 차지했다. 순위 결과가 아쉽진 않았나.
다른 모창실력자들이 워낙 잘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1등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2등을 한 것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순위보다는 마지막 무대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성대결절로 인해 본래 준비했던 ‘살다가’ 무대를 하지 못하고 급하게 ‘Timeless’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승전 때 다른 무대보다 부족한 점이 많이 드러났다. 하지만 관객, 시청자들에게 감정이 잘 전달됐다면 만족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천천히 나만의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 지금은 강연자로서의 삶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청소년이나 대학생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고 싶다. ‘저 사람도 저렇게 인생이 변했는데,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흔히 말하는 ‘힐링전도사’가 향후 목표다.

▶끝으로 이 기사를 접할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든 분명히 마음속에 갈망하는 꿈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사회가 원하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둬 꿈을 포기하는 것은 자신을 절망으로 밀어버리는 행위와 같다.
조급해 할 필요없이, 순간순간의 노력이 모이면 보다 나은 미래가 된다. 차근차근 도전하면 어느 순간 꿈꾸던 미래에 도달할 것이다.
 

 


이상은 기자  32153187@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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