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판매 현장 - 홈리스 1만명 시대, 절망보단 희망을 택한 사람들
≪빅이슈≫ 판매 현장 - 홈리스 1만명 시대, 절망보단 희망을 택한 사람들
  • 박다희·권혜진 기자
  • 승인 2016.05.10 19:40
  • 호수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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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지하철역, 거리, 박스와 술병, 더러움, 무능력 혹은 무책임…. 이 단어들을 보고 연상되는 것이 있는가. 혹 ‘홈리스(Homeless, 노숙인 등 주거취약계층)’가 떠오르지는 않는가?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힌 것이라 비난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대체로 그들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부정적이다.
지난 2014년 서울시의 조사에 따르면 집 없이 밖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는 800여명, 홈리스 시설에 입소한 이는 4천4백여명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수치를 산출할 수는 없으나 매년 유사하거나 소폭 상승하는 듯하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건만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차가운 거리로 내몰았을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좇으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이다. 모두 홈리스 출신으로 청년과 재능기부자들이 만드는 잡지 《빅이슈》를 판매한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된 대중문화 잡지로, 우리나라엔 2010년에 들어왔다. 홈리스에게만 잡지 판매 권한을 줘 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거리에서 자립을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를 지난 4일 강남역에서 직접 ‘빅돔(빅이슈 판매도우미)’이 되어 들어봤다.

# 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
‘그래도 조금 무서운데….’ 지하철역을 오가며 흔히 보던 홈리스의 이미지 때문일까. 왠지 긴장된 마음으로 지난달 30일, 빅돔이 되기 위한 사전 교육을 받으려 신정역에 위치한 ‘빅이슈코리아 판매국’을 찾았다. 조심스럽게 사무실 문을 연 순간, 안에 있던 대여섯 명의 빅판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라며 반갑게 맞아주는 목소리에 잠시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빅이슈》가 추구하는 가치와 저의 가치관이 잘 맞았어요.”, “잡지를 구매해보니 내용이 좋아 빅돔까지 하게 됐습니다.” 저마다 자기소개를 하며 모여 앉은 교육 시간. 교육 담당자는 가장 먼저 《빅이슈》의 체계를 설명한다.

잡지 판매 시 가격 5천원 중 절반을 빅판에게 돌려주며, 6개월 이상 활동했을 경우 임대 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홈리스가 사회적으로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이어 빅돔으로서 주의할 점을 설명한다. “빅돔은 판매보다는 응원의 역할이 더 크다”며 “빅판이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교육 내내 거듭 강조한다. 교육을 모두 수료한 후 곧바로 ‘4일 오후 5~7시, 강남역 10번 출구’로 빅돔을 신청했다.

드디어 5월 4일, 봉사 당일이다. 어떤 빅판을 만나게 될지 여느 때보다 설레는 발걸음으로 현장에 도착했다.

# ≪빅이슈≫와 함께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잡지 《빅이슈》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빅이슈》입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7시,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빨간 조끼를 입은 빅판 서명진(44) 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서 와요 학생들. 오늘 날씨가 추워서 고생하겠네. 도우러 와줘서 고마워요.” 빅돔으로 온 기자를 알아보고 먼저 살가운 인사를 건넨다. 3시간 째 혼자 서있던 그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
빨간 조끼와 홍보용 팻말을 받은 기자는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판매 준비를 한다. 오늘 하루 매상을 한껏 올려 짐을 덜어드려야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져본다. 하지만 그도 잠시, 매정하게 돌아서는 냉기 어린 사람들의 눈초리에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 설상가상 유난히 거센 바람이 부는 날씨 탓에 옷깃을 여미고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 또한 수두룩하다.

기자의 지친 기색을 눈치챘는지 서 씨는 “힘들지요, 학생들? 가끔은 아무리 외쳐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마치 투명인간이 된 듯한 느낌도 들지만, 그들과 소통해야겠다는 오기도 생겨요”라며 밝게 웃는다. 잡지 발행일마다 찾는 단골손님도 있다며 마치 스타가 팬 자랑하듯 하나하나 소개하는 그의 얼굴에 보람이 가득하다.

“학교 마치고 온 거예요? 밥은 먹었나?” 혹시나 판매에 방해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긴장을 풀어주려 계속해서 말을 건넨다. 어느새 우리는 반상회 나온 아줌마들 마냥 수다를 떨고 있었다. 무관심하게 바삐 걸어가던 사람들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돌아보곤 한다. 교육 때 배운 ‘잡지 한 부 더 팔기 위한 일손보다 관심과 독려가 필요하다’는 말이 와 닿는 순간이다.

이것저것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즈음 젊은 학생이 지갑을 열며 다가온다. 판매원에게 친근히 대화를 걸어오는 모습에서 한눈에 봐도 처음 구매하는 것 같진 않은 익숙함이 느껴진다.

잡지를 손에 든 오비나(26) 씨는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지하철역을 지날 때마다 최대한 구매하려고 한다. 잡지의 질도 좋고 만족스러운 편이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취업을 준비하다 보니 심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자주 사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한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주변을 살피는 학생의 고운 마음씨에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판매할 잡지를 정리하던 중 잡지 뒤편에 또박또박 쓰여 있는 손편지가 눈에 들어온다. 무엇인지 묻자 서 씨는 “아 이거요? 잡지를 사주신 분들에게 소박하게나마 감사함을 표시하고자 직접 손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고통을 겪었기에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이나 좋은 글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죠. 나 같은 사람도 제2의 인생을 위해 힘차게 도약하고 있으니,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고 답하며 수줍게 웃는다.

삶의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고통은 무엇일까. 무료급식소를 쫓아다니며 끼니를 해결하고, 하루하루 머물 곳을 찾아 헤매며 살아오던 그의 2년여간 노숙 생활이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3년 전 우연히 알게 된 《빅이슈》를 통해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그.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성실히 일해서 번 돈으로 밴드 활동 등 음악 분야에서 꿈을 펼치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행복이 엿보인다.

# 당신의 ≪빅이슈≫
두 시간 동안의 빅돔 체험을 마치고 구매한 잡지를 손에 쥔다. 잡지 뒤에 쓰인 ‘모르고 지나가는 행복’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오늘 하루 스무 권을 팔았다는 그에게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남기고 발걸음을 돌린다.

지난 2010년 이후 정식 빅판은 772명이며, 그중 임대 주택에 입주한 인원은 78명이다. 5년간 10%에 불과한 인원만 꾸준히 판매에 성공해 주거비용을 마련했다니 빅판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나 보다. 강남역을 지나던 사람들은 한결같은 잿빛 표정을 한 채 바삐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유동인구가 워낙 많아 발걸음도 빨라지는 강남이지만, 잠시 걸음을 멈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빅판을 만나보자. 서울 지역 내 60명의 빅판들은 오늘도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고 외치며 잡지를 판매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내는 희망의 목소리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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