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의 또 다른 ‘연석이’를 떠올리며

가정의 달 단대신문l승인2016.05.10l141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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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꿍 연석이는 그야말로 아웃사이더의 표본이었다. 짧은 스포츠머리, 담배냄새가 희미하게 밴 헐렁한 교복, 까무잡잡한 피부…. 항상 점심시간에 맞춰 슬리퍼를 질질 끌며 후문으로 들어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처음 연석이에게 말을 건넸던 건 짝꿍이 된 지 2주일이나 지나서였다. “저기…오늘 주번이던데” “알아” “주번은 1교시 전에 와야 돼.” 말을 이어가려 애썼지만 그저 낡은 파란색 mp3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당시 중학교 2학년 담임은 연석이한테만 너그러웠다. 대개 불량학생들은 아침조회 때 교실 뒤편 사물함에 일렬로 서서 기합을 받곤 했다. 재수가 없으면 종례 후에도 교무실로 종종 불려갔다. 하지만 연석이는 별다른 훈계를 받지 않았다.


◇ 학급 불량학생들 눈에 그 모습이 아니꼽게 비춰지는 건 당연했다. 어느 순간부터 연석이의 책상 위엔 우유팩이 터져 있었고, 사물함 속 교과서는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러나 별 개의치 않은 듯 의연했다.


연석이는 격주에 한 번씩, 화요일 수업의 끄트머리마다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멍 때리는 표정으로 있다가도 수시로 핸드폰 슬라이드를 열어 초조한 듯 시간을 확인했다.


체육대회가 열렸던 날도 화요일이었다. 형형색색의 반티들로 가득 찬 운동장에서, 우리 반만 유일하게 남색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쓸 데 없는 데 돈을 쓰지 마라”는 담임의 으름장 때문이었다. 연석이는 혼자 꾸깃꾸깃한 검정색 사복 츄리닝을 입고 의연히 서 있었다.


◇ 그때 담임이 연석이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학급 아이들한테 설명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저 거지새끼 때문에 우리 반만 체육복 입잖아”라는 볼멘소리가 어디선가 터져 나왔다. 이윽고 연석이 주변으로 남자아이들이 빙 둘러싸 거친 발길질이 시작됐다. 담임이 출동한 건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은 때였다.


“앞으로 주번 차례가 오면, 부탁할게” 연석이는 늘 그랬듯 속을 알 수 없는 말만 남긴 채 비틀거리며 사라졌다. 운동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긴 두 동강 난 파란색 mp3만 싸늘하게 뒹굴 뿐이었다.


정확히 열흘 뒤 학교를 찾아온 경찰아저씨의 추궁에 별다른 대답을 못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연석이는 그저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 행방이 묘연한 짝꿍이었다. 늘 쥐고 다녔던 파란색 mp3엔 재생목록이 없었다는 사실도, 엄마를 볼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두 번 뿐이었다는 것도, 담임의 도움으로 간신히 학교를 나왔던 사연도 그전까진 전혀 알지 못했다.


◇ 가정의 달을 맞아 불행한 가정의 아이를 주인공으로 상황극을 만들어봤다. 허구이지만 학창시절 연상되는 친구가 한 명씩은 있을 것이다. 이혼율은 갈수록 치솟고 각종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지금, 기억 속 존재할 연석이를 떠올리며 모두가 행복한 가정의 날을 보낼 수 있길 소망해 본다.   <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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