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

단대신문l승인2016.05.10l141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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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청해진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부근 해상에서 전복됐다.


당시 세월호의 탑승인원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104명, 선원 33명까지 포함해서 476명이었다.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된 후 구조된 탑승자는 승무원 23명, 단원고생 75명, 교사 3명, 일반인 71명뿐이었으며,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은 실종됐다.


2년이 흐른 후에도 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수많은 꽃다운 나이의 단원 고등학생이 구조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숨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아직까지도 세월호 유족들이 원하는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원인은 2016년인 현재까지도 규명되지 않아, 이와 관련된 여러가지 가설이 떠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가설은 ‘암초충돌설’로 세월호가 안개로 인해 암초를 발견하지 못해 암초와 충돌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또한 ‘구조결함설’에선 세월호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선박 규정을 어기고 무게 중심을 높인 구조적 결함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그 외 ‘변침설’이 존재한다, 변침이란 항로를 변경한다는 뜻인데, 세월호가 운항 중에 급격한 변침으로 무게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쏠려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정확한 진실은 빠른 시일 내에 세월호가 인양돼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세월호 참사 후 △정부와 해경의 위기관리 대처 방식 △언론의 보도 양상 △승무원들의 직업적 소명감 등은 더욱 더 크나큰 사회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후 선박직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선박에 두고 “움직이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한 후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고 자신들은 제일 먼저 탈출했던 사실, 정부와 해경이 과연 구조 작업에 공공의식과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했는가에 대한 의문점들, 언론이 사실에 근거한 책임있는 보도를 했는가에 대한 성찰 등은 아직도 한국사회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 및 의문점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한편, 이 와중에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 세월호 추모 천막을 단계적으로 축소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서울시의 의도가 어디에 있던 간에 세월호 참사의 사회적 문제의식은 축소되지 말아야 하며,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도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야만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해결의 단초를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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