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백<46> 박차정
역사고백<46> 박차정
  • 김명섭 역사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10 19:56
  • 호수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차정, 남편 김원봉과 함께 총을 들다
▲ 1931년 3월 결혼 당시의 김원봉과 박차정

나 ‘밀양사람 김원봉’의 아내 박차정이요. 내 남편은 1919년 의열단을 창단한 이래 해방 직전까지 현상금 100만원(현시세 약 320억원)이 걸린, 일제 고등경찰과 밀정들이 가장 잡고 싶어 했던 위험인물이었지요. 독립전쟁에 뿌린 업적이 누구 못지않거늘, 아직도 테러리스트니 공산주의자로 보는 후손들이 있어 내 남편이며 전우로서 한 맺힌 해명을 하려하오.  

난 1910년 5월 7일 경남 부산 동래의 복천동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일제 식민통치에 비관해 나 9살에 자결한 민족지사요, 어머니는 사회주의 독립지사인 김두붕의 친척이니 일찍이 민족의식과 평등사상에 눈 떴지요. 곧 동래의 일신여학교에 진학해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졸업 후 20살에 여성 민족단체인 근우회에 가담하였소. 곧 중앙집행위원이 돼 선전조직과 출판 분야를 맡았는데, 행동강령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와 인신매매 폐지, 부인노동자의 임금차별 철폐와 산전산후 임금 지불 등을 주창했지요.

1929년 광주에서 일본인이 한국여학생을 괴롭혀 저항하는 학생운동이 일어나고 서울에서도 여학생 시위사건이 일어나자 우린 이를 후원하였지요. 일제는 나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해 근우회 창립자인 허정숙과 함께 구속하였소.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유치됐다가 출옥하였소. 이후 난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의형제 관계였던 오빠 박문호가 보낸 청년을 따라 1930년 봄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게 됐지요. 그곳에서 운명의 남자 김원봉을 만났어요. 

당시 김원봉 의열단 단장은 중국의 국공합작이 붕괴돼 백색테러가 남발하던 상해 지방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북경으로 와 국내의 대중운동과 연결하려 노력 중이었죠. 이국땅에서 많은 동지들을 내전으로 잃고 상심하던 김원봉에게 위로를 해주던 난 곧 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됐어요. 다만 독립전쟁을 위해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하고,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동지로서 결합하자는 약속을 하였죠.  

▲ 경남 밀양시 내일동 해천 김원봉·윤세주 생가 주변에 조성된 독립운동가 거리

이후 김원봉 단장은 조선청년만의 군대를 만들기 위해 남경에서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의 교장으로, 1935년 민족혁명당을 만들어 서기부장으로 활동했어요. 난 그이 옆에서 여자부 교관으로, 또 조선부녀회 회장으로 활동했지요. 오랜 준비 끝에 1938년 10월 조선민족전선연맹을 만들고 그 군대로 조선의용대를 창립했어요. 그이가 총대장을 맡았고 내가 부녀복무단 단장을 맡았지요. 특히 우리 여성들도 항일전쟁에 직접 나서기 위해 남자들처럼 군사훈련을 톡톡히 받았고, 일본군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방송에도 참여한 기억이 있어요.

조선의용대는 일제에 의해 무한이 점령당하자 일선 최전방에서 전투를 치루며 계속 근거지를 옮겨야 했어요. 나도 대원들과 함께 전투도 하며 행군해야 했는데, 1939년 2월 강서성 곤륜산이란 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그만 가슴에 총을 맞고 부상을 당하고 말았어요. 남편은 날 이끌고 중경까지 이동해 치료를 해줬는데, 전장에서 치료를 제대로 못하니 부상 후유증이 점차 심각해졌죠. 결국 남편이 김구 주석의 임시정부와 좌우합작을 이뤄 군무부장으로 취임하던 무렵인 1944년 5월 27일,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어요.

죽기 직전 눈물을 흘리는 남편에게 유언으로 그이를 흠모하던 20살 연하의 동지인 최동선과 재혼하라고 부탁했어요. 독립전쟁 준비로 큰일을 할 부군을 도울 새 여성동지가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내 죽은 지 8개월만에 남편은 유언대로 김구의 주례로 혼인식을 올렸죠. 

해방이 된 후인 귀국한 남편은 1946년 3월 내 ‘핏덩이가 말라붙은 속적삼’과 유골을 가져와 친가에 전해주고, 밀양 감전동 뒷산에 안장해 주었어요. 2015년 영화 <암살>의 영향으로 남편과 의열단의 독립투쟁이 조금이나마 빛을 발해 밀양시내에 문화거리도 생기고 의열기념관도 건립 계획 중이라니 다행입니다. 부디 제국주의와 좌우분단에 맞서 싸웠던 우리 부부의 독립·평화통일의 정신도 잊지 말아주길 바라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