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어주는 기자<8>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고전 읽어주는 기자<8>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 설태인 기자
  • 승인 2016.05.31 11:59
  • 호수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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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의 소통으로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라

“방드르디는 그가 꾸벅꾸벅 순종하는 태도 이면에 어떤 개성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개성에서 생겨 나온 것이란 하나같이 그의 마음 깊숙이 충격을 주는 일들이고 통치된 섬의 질서를 해치는 일뿐이라는 사실을 로빈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中 200p)

 

누구나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충성을 다하는 하인 ‘프라이데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개한 원주민이던 프라이데이는 로빈슨을 따라 글자나 종교 따위를 배우며 문명인의 길을 걷지만 이마저도 조연에 불과하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가 어디까지나 주변인이었던 프라이데이의 시선을 빌려 『로빈슨 크루소』를 재구성한 책이다.


난파를 당한 로빈슨은 자신이 머물게 될 무인도를 ‘스페란차(희망)’라고 이름 붙인다. 하루빨리 무인도를 벗어나 익숙한 문명 세계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법을 만들거나 농사를 짓고, 자신을 총독이라 칭하며 섬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로빈슨의 고독한 섬에 타자 ‘방드르디’가 등장한다.

원작의 프라이데이가 로빈슨의 충실한 일꾼이었다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방드르디는 열심히 문명의 터전을 일궈나가는 로빈슨을 향해 폭소를 터트린다. 화가 난 로빈슨은 방드르디의 뺨을 때리지만, 그제야 자신이 의존하던 제국주의·청도교주의적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관습적으로 행해왔던 사회 규범이나 가치가 쓸모없음을 깨달은 로빈슨은 비로소 자기만의 삶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다니엘 디포의 역작이라 불리는 『로빈슨 크루소』는 그간 수많은 재해석이 이뤄졌지만 ‘원시적 자연에 대한 문명의 승리’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로빈슨은 항상 조국인 영국을 그리워하는 동시에 스페란차의 근대화를 꿈꾸며, 미개했던 프라이데이가 교육을 통해 문명적 삶을 사는 모습에선 서구 문명이 가진 우월감이 엿보인다. 이러한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 저자 투르니에는 반감을 표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도 자기 논리에만 빠져 산다면 외딴 섬에 갇힌 것과 다름없다. 로빈슨이 타자의 등장을 통해 그동안 자신을 지배하던 신념에서 한 걸음 떨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삶의 지평을 넓혀나간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거나 밀려오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타자와의 소통은 필수다.

타자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낯선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동시에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고마운 존재다. 방드르디가 로빈슨이 갈고 닦은 문명의 섬을 파괴했듯, 이제부턴 사회적 관행이나 기존의 습관과 같이 자신을 가두는 익숙함을 부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어떨까.

▲ 저 자 미셸 투르니에 책이름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출판사 민음사 출판일 2011. 5. 19. 페이지 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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