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야인시대
<백색볼펜>야인시대
  • <禎>
  • 승인 2002.11.19 00:20
  • 호수 108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의 열기가 뜨겁다. 시청률조사 전문기관 ‘닐슨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시청률은 5주째 1위, 인터넷에는 400개가 넘는 ‘야인시대’ 관련 팬클럽이 생겼다. 연기자 ‘안재모’는 이 드라마의 ‘김두한’역으로 일약 특급배우로 성장했다.

◇‘조폭’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항상 그래왔듯이, 이 드라마도 패싸움과 욕설이 난무해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화려한 카메라워크로 폭력을 미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은 만주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인공 김두한의 대사에서 보듯, 조선 주먹들의 폭력은 종로를 차지하려는 일본 야쿠자에 맞서기 위한 것이므로 정당하다는 논리까지 스며들었다. 여기에 조폭을 ‘상명하복과 의리를 중시하고, 상인들을 보호하며 정당한 세금을 걷는 무리’로 묘사해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줄 우려도 있다.

◇그래도 ‘야인시대’가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역표시가 거의 나지 않는 카메라 연출기법, 개성미가 넘치는 싱싱한 조역들의 선정까지 잘 만든 영화 못지 않다. 또한 전문가들은 드라마 성공의 한 요소로 ‘게임적 요인’이 필수라고 하는데, ‘서바이벌 게임’처럼 펼쳐지는 이 드라마의 전개방식은 시청자들에게 게임의 주인공이 된 듯한 쾌감을 주는 듯 하다. 특히 컴퓨터 격투게임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이러한 전개방식은 너무나 친숙하다.

◇피를 튀기고 몸을 날리는 ‘서늘한’ 화면은 잠자던 폭력 욕구의 대리 충족일 수 있다. 차력술만 실컷 보여준 후 정작 약은 팔지 못하고 구경꾼들을 되돌아가게 만드는 약장수의 처신은 자칫 숫자의 마술에 빠지기 쉬운 드라마 제작진에게 반면교사다. ‘야인시대’에서 우리가 진정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야인의 몸이 아니라 야인의 정신이다. 민권운동가 함석헌(1901~1989) 선생의 수필 ‘야인정신’에는 이런 대목이 들어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없었다면 없을수록,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전해오게 되는 데 그 사실을 뛰어넘은 진실성이 있다. …(중략) 사실(事實)은 사실(史實)이 되어야 하고 사실(死實)에 이르러야 한다.”
<禎>
<禎>

 whitecat00@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